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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돌아갈 전원도 없다.

무릉사람 2019. 4. 26. 22:13

전원시인으로 알려진 도연명은 팽덕현의 현령으로 있던 중 상관인 독우의 순시 때에 출영을 거부하고 「쌀 닷 말 때문에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면서 귀거래사를 읊으며 현령의 인끈을 풀어주고 나온다. 이 전설(?)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시인의 기개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나약함에 많은 비애를 느낄 것이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 봉급생활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고, 직장에서의 최대의 고충 중의 하나가 상사에 의한 부당한 대우라고 입들을 모아 말한다. 오랫동안이든 잠시 동안이든, 높든 낮든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억압적인 직장의 문화나, 고압적인 상사로 인해 황당하고 난감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단지 상과 하 관계라는 이유로 -업무상의 서열이지 인격의 서열이 아닌데도-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일을 시키고, 반말을 하는 등 무례하며 비아냥 등의 인격적 모독을 가하고 군주처럼 사람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전문지식이 뛰어나고 능력으로써 압도 한다고 해도 안 되건만, 오너라고, 남자라고, 상관이라고 생존의 터전인 직장을 약점으로 삼아 봉건왕조식의 절대복종을 강요하고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하고 공공연히 상납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는 해고를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등 더욱 기세등등하고, 압박이 노골적이다. 이럴 때 분노가 끓어올라 목에 까지 차지만 별다른 대항수단이 없어 「먹고 살려니까」「부양할 가족 때문에」참는 것이 항간의 사정이고 우리네 봉급생활자들의 어찌할 수 없는 신세이다.


모욕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것이 나의 능력부족이나 게으른 것이 원인이라면 할 말이 없겠으나, 단지 상사라는 우월감과 권위의식에 의한 횡포라면 그것은 폭력이요 핍박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비단 직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계약관계에 있어서 약자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는 사람 경찰서 검찰청 법원 감옥 등 죄를 지어서 대항력이 약화된 사람들에게 더 혹독하여 당해본 사람은 정신적 황폐화에 이르고 인간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그런 비인격적이고 반인간적인 작태가 당해본 사람에 의해서 반복되고 증폭되며, 법과 규정을 이용해서 사감을 풀고 정당한 권한을 넘어서서 부당하게 사람을 지배 하려고 하는데 있다. 직장에서의 상명하복이나 서열중시는 업무의 효율성, 통일성, 안정성 때문에 필요한 것인데도 이를 곡해하여 사람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알아 인간적 약점을 파고들며 「핀잔을 위한 핀잔」은 고문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고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며 사람을 비열하게 만든다.


동양의 전통적 미덕은 아랫사람을 감싸고 아끼면서 인격이나 능력으로써 권위를 세워 나가는 것이지 강제력으로 하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아랫사람의 자발적인 협조와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상사가 훌륭해야 하고,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 장차 황제가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고 새끼 봉황일 수도 있고 엎드린 용일 수도 있는 것인데, 아랫사람의 기상을 내리누르고 반듯함을 시기하는 것은 윗사람의 금도가 아닌 것이다.


또 상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뒷강물이 앞 강물을 밀어내는 이치에서 진퇴를 알고, 왜 후생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며, 나를 발판으로 하여 부하가 승진하고 영전하는 것을 기뻐하고 환영해야 할 것이다. 절대로 사람을 무식하고 무례히 대하여 그들이 자조하지 않게 하고 모욕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며 이것이 현대판「노예제도」이고 「나는 한낱 기계의 소모품에 불과 하구나」하는 생각이 안 들게끔 여러모로 배려해야 한다. 사람을 쓰면서 나무결처럼 쓰거나 국사대접은 못할지언정 조직을 원망하고 적의를 가지게 하는 것은 극구 피해야 할 것이다.


상관이 용렬한 곳에서는 용렬한 사람들만 모여드니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들은 발붙일 수 없고, 정실이 난무하니 사람들은 반항적이 되고 냉소적이 되고 익명적이 된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자기는 항거 못해도 거기에 맞서는 사람을 흠모하고 전원생활을 동경한다. 여기에 옛 시인이 용기 있고 풍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찬양되고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는 것이다.. 내게 선처를 구하고 사정을 해야 할 사람이라고 물건 다루듯 하고 벌레 본 듯 하는 것은 죄악이다. 가난하다고 무시하거나 죄를 지었다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범죄이다.


그들도 어쩌다 그런 입장이 된 것이지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고 나도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차마 그렇게 못할 것이다. 더욱 한동안 장안의 화두인 「계급장」 을 떼면 남는 것은 인격이고 인품이며, 목욕탕에 들어가면 짐승을 면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가. 다 어엿한 한 가정의 남편이요, 아내요, 형제요, 아빠요, 자식임을 생각한다면, 알고 보면 다 착하고 인정 많은 우리의 이웃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 땅에서 같이 번영하고 같이 복락을 누릴 상대라는 사실에 철저하다면 인간이 인간을 하대하는 일은 엇을 것이다.


전쟁포로도 제네바 협약에 의해서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데, 하물며 매일 보고 만나는 사람들 간에 불미스럽고도 험악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믿는 종교, 신념, 가치가 나와 다르다고 모독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사람 꼴이 말이 안 되게 우습게 만들고 「인간이 아니라 짐승」「나는야 로마시대의 검투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해야 한다. 어쩌면 밤낮으로 음모나 꾸미고 말로써 한 몫 하는 당신보다는 수모를 참으면서 가족의 안위를 생각하는 부하가 더 나을 수가 있고, 오늘 내 자리가 내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아랫사람들의 공로가 지대하다면 더 이상 사람을 화나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일은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온갖 치욕을 참아야 하는 사람들의 충정을 이해하고 친밀감을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열린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도연명이야 자존을 지키기 위해 돌아갈 전원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돌아갈 밭 한 뙈기 초가집 한 채 없으니 이를 어찌하나, 도연명이야 돌아가 농사짓고 시도 지을 수 있는 목가적 시골이 있었지만, 오늘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하게 파헤쳐지고 가는 곳마다 먹자판 놀자 판인 이 나라에서는 어떻게 빼어난 시나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러나 설령 되돌아 갈 전원이 없고, 반겨줄 고향이 없다 하더라도, 옛 시인이 맞았던 바람이나마 스치고 싶고, 눈빛 주었을 밤하늘의 별이라도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