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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

무릉사람 2019. 4. 27. 20:52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장(戰場)에서도, 삶이 맨몸으로 부딪히는 시장에서도 사랑이 있고, 사랑은 자란다. 


  고슴도치가 제 새끼를 귀여워하는 것이 원초적 사랑이라면,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는 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없는 사랑이라 할 것이다. 앙탈이나 교태, 유혹으로 또는 헌신과 봉사 등으로 사랑은 천의 얼굴을 하고 온다. 때로는 심술궂게 때로는 어여쁜 모습으로,


사랑은 세상이 망할 때까지 같이 하는 유일한 것이고, 지구 최후의 날에 많이 볼 수 있고, 인류 종말의 날에 가장 왕성할 것이다. 사랑은 콩깍지가 씌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항복하는 것이며, 나와의 다름이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은 말로서 표현해도 기쁘고, 행동으로 보여줄 때 더욱 호소력이 크고 눈에서 눈으로 통할 때 절정을 맞는다. 사랑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나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주는 것이라 받는 이나 주는 이나 기쁨이 배가 된다. . 


  사랑은 흔쾌(欣快)이고 흔연(欣然)이라 뒤끝이 개운하고 앙금이 없다. 사랑은 깎고 나누는 분리(分離)가 따른다. 선비는 가상한 기개를 바칠 것이요 여인은 범접키 어려운 정조를 허락할 것이요 상인은 장사술을 가르쳐 줄 것이고, 스승은 자기 자리를 제자에게 물려 줄 것이다.


사랑은 완료형이 아니다. 그러니 손 놓은 것이 아니다.「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것은 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 트렌투스나 맑스처럼 관계를 맺고 관련을 짓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람이 하는 것을 존중하고, 천리를 가자하면 기꺼이 만리도 가는 것이다. 사랑은 동질감고, 일체감이며, 교감이다.


사랑은 원망이고. 노여움이다. 사랑은 망설임이고. 주저함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끝까지 지지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뭇사람이 그 사람을 오해하고 폄하하더라도 나만은 그를 감싸고 옹호하고, 만인이 그를 내쳐도 나만은 그를 신뢰하고 그의 결백을 믿는 것이다.


사랑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표정을 알 수 있고, 한참 뒤라도 그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사랑은 외방향일 수도 있고 양방향일 수도 있다. 사랑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성립하고, 상대방이 못나게 보여도 양립(兩立)되는 것이다. 사랑은 내 주관으로 이러해서 미워하고 저러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눈먼 사랑도 있을 수 있고, 말 못하는 벙어리 사랑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순간적으로 기분 나쁘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사그라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랑은 뭉게구름 같아 꾸역꾸역 피어오르고 먹 같아 주위로 계속 번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람의 가장 따뜻한 가슴에서 자라는 것이고, 함부로 침범을 당하지 않게 가슴에서 품어지며, 쓸수록 솟아나도록 가슴에서 생기는 것이다. 사랑은 폭풍처럼 와 우리를 날려버릴 수도 있고, 보슬비처럼 우리를 촉촉이 적실 수 있다. 사랑은 활화산처럼 우리를 들뜨게도 하지만 시베리아 동토처럼 매섭게 한기를 느끼게도 할 수 있다.


사랑은 해일처럼 갑자기 몰려올 수도 있고, 타다 남은 재처럼 스산함만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사랑은 즐거움으로 올 수도 있지만 눈물이 나도록 그렇게 올 수도 있다. 사랑은 우선권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고, 나는 이래에 처하겠다는 것이다.


사랑은 쫓으면 달아나고. 멈추면 쫓아온다.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할 때, 도를 도라 할 때부터 도가 아닌 것처럼 사랑이 아니다.지장보살이「온 중생이 다 구제 받지 않으면 성불(成佛)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사랑의 극진함과 사랑의 정순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랑은 낭만파 시인 예이츠(Yeats)가 「나 가난하여 꿈만 가졌기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사뿐히 밟으소서」라고 읊은 것처럼 꿈이라도 주는 것이고, 소월(素月)처럼 나를 버리고 가는 님에게까지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가는 발길을 축복하고 축원하는 것이다.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나는 위인이 작아 사람들의 사랑을 흉내도 내기 어렵지만, 사랑의 오묘함과 사랑의 신비함만은 알고 있다. 사랑을 길이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 사랑이 범람하는 시대에, 잠깐 사랑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데, 사랑에 대한 나의 의견은 겨우 변죽을 울렸을 것이다.


2003年 10月 13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