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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힘

무릉사람 2019. 5. 10. 10:58

세계 인구의 반은 남자이다. 남자는 인류역사에서 꽤나 위세를 부렸다. 그러나 성하면 쇠하는 법. 이제 남자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살뿐이다. 누구에게나 영광의 날이 있었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여자일까, 남자일까. 옛날 중국 서진시대 사람 반악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수레를 타고 거리에 나서면 여인들이 몰려들어 꽃을 던지며 구애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김창협은 평안관찰사를 지냈는데, 많은 아리따운 기생들이 그의 사랑을 얻으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마침내 임기가 다 돼 한양으로 돌아갈 때, 계향이라는 기생이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자고 청하자 김창협은 얼굴을 돌리고 한삼을 걷어 손을 내밀었다. 미장부(美丈夫) 앞에서는 미녀(美女)도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관대한 사람은 남자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은 남만의 족장 맹획이 마음속으로 복종하기를 원해 일곱 번 잡았으나 일곱 번 놓아준다.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징기스칸은 칸이 되기 전 테무진일 때 메르키트족의 공격을 받아 아내 보르테가 납치되었다. 뒤에 복수를 하여 아내를 찾아왔으나 이미 적장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이에 테무진은 여자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남자들의 잘못이다.라며 보테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남자의 가슴은 때로는 태평양보다도 넓다.

 

남자는 원한도 사무치도록 품는다. 사람들은 여인이 한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 남자가 한을 품을 때 그런 것이다. 장홍은 충신인데 억울하게 죽었다. 그가 죽은 지 3년이 지나자 그가 흘린 피가 벽옥(碧玉)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 진성여왕 때 은자(隱者) 왕거인은 억울하게 잡혀가자 분원시(憤怨詩)를 지었는데, 이런 내용이다. 우공이 통곡하니 삼년 가물고. 추연이 슬퍼하자 오월에 서리가 내렸다.. 여자는 겉으로 울지만 남자는 속으로 운다.

 

남자는 한 번 정념의 불꽃이 타오르면 쉬 꺼지지 않는다. 신라 진지왕은 살았을 적 도화부인을 그리워하고 죽어서도 못 잊어 귀신으로 찾아와 끝내 만난다.

우리에게 자유론으로 널리 알려진 존 스튜어트 밀은 첫사랑 여인 테일러를 그녀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 20여년을 기다려 결혼한다.

 

중국 송나라의 애국시인 육유는 76세에 첫 부인 당완을 못 잊어 해 심원춘이라는 애절한 사랑의 시를 남긴다.

또 오삼계는 진원원이라는 아리따운 여인을 위하여 청나라 군사에게 만리장성의 문을 열어주어 명나라가 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서지마는 임휘인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북경으로 가는 도중 비행기가 추락해 불귀의 객이 된다.

 

남자는 진리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간다. 꿈의 이름들인 법현, 현장, 혜초는 구법(求法)하러 죽음의 사막을 건너 인도에 갔었다.

혜가는 달마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기 왼쪽 팔을 베자 흰 눈 쌍인 소림사는 이내 붉은 눈으로 변한다.

 

남자는 학문의 즐거움에 빠지면 눈이 오는지 풀이 자라는지 모른다. 주렴계, 장재, 이덕무는 침식을 잊고 독서를 했고. 자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일어나 종이에 옮겼으며, 좋은 글귀를 보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덕무는 공자와 맹자를 뼛속깊이 고맙게 생각한 남자였다. 그는 배가 고프거나 술이 먹고 싶으면 공자와 맹자 책을 팔아 양식과 술을 샀고. 겨울에는 이불 대신 책의 낱장을 덮고 잤다.

 

남자는 벗으로 인해서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기도 한다. 아킬레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전쟁 초기에 트로이군에게 죽자 마음을 바꾸어 참전하나 끝내 그도 파리스가 쏜 화살에 맞아죽는다.

고려 말 나옹선사는 스무 살 때 친구가 죽자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쓰는 사람도 남자이다. 칠레의 저항시인 네루다는 오늘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쓴다.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남자이다. 옛날 형가가 시황제를 암살 하 러 떠날 때, 고점리는 축을 울리고 함께한 사람들은 울면서 노래를 불렀다. 장사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세상에서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리는 사람도 남자이다.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은 아들에 의해서 아그라성에 유폐되자 건너편 왕비 무므타즈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흘린 눈물이 성을 감싸고도는 아무나강의 강물만큼이나 될 거라고 타고르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남자이다.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끼는 필명이고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이다. 필명 막심 고리끼의 뜻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갖게 했을까?

 

남자는 여자의 의지처이고 굳건한 성()이자 빛이다. 홍랑은 최경창이 죽자 자색을 망가뜨렸고. 이청조는 남편 조명성이 죽자 발랄하였던 시풍(詩風)이 음울해 졌다. 남자의 부재(不在)는 여인에게는 비단옷 입고 밤길 가는 것이다.

 

2019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