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성(有限性)의 힘
「무한한 장강(長江)을 부러워하고. 유한한 인생을 슬퍼한다.」는 말은 소동파가 했지만,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은 마냥 슬퍼할 수는 없었다, 백척 간두의 깨달음이 가장 큰 깨달음인 것처럼 인생은 유한함에서 오히려 생명의 존귀함. 생명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실존주의의 외침은 인생의 유한성에서 나온 성찰이었다.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은 목적에 합당해야만 의미와 가치를 지니지만 사람만은 존재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선언은 인생을 관조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의 유한함은 세상에 괴로움과 슬픔을 가져왔지만 덩달아 그 짝인 즐거움과 기쁨도 가져왔다. 또한 그리움과 애달픔은 물론 설렘도 불러들였다. 유한성은 사람을 절망과 낙담으로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진리를 찾고 도를 구하기 시작했다.
앞 못 보는 호머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라는 박진감 넘치는 대서사시를 읊을 수 있었던 것은 상상력만이 유일한 유한 중의 유한에 있었기 때문이고. 양명학자 왕수인이 장가간 날 처가 이웃의 도관에서 도사와 담론하느라 날이 새서야 신방에 돌아온 것은 유한성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유한함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불쌍히 보게 한다. 내가 오늘 아침 보는 저 붉은 해를 내일 아침 또 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똑같은 운명이 아니던가. (인생)의 유한함은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음도 가르쳐주고. 아무리 큰 슬픔도 아무리 큰 기쁨도 덧없다고 일러준다.
(인생)의 유한함은 모든 사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도록 하고. 모든 사람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싶도록 한다. 유한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기도록 애쓰게 하고, 지금 나의 이 자리가 꽃자리 임도 알려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오로지 유한성에 힘입은 것이다.
(인생)의 유한성은 끝내 사람도 자기를 닮으라 한다. 쌓는 것에 힘쓸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에 힘써야 하고. 얻는 것을 좋아할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을 좋아해야 하며,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여인이 국색(國色)이고. 지금 내가 안겨있는 이 남정네가 국사(國士) 임도 가르쳐준다.
(인생)의 유한함은 우리의 생명은 빌려 쓰는 것임을 귀띔해 주고, 돈 세는 기쁨도 있으면 밤하늘의 별을 세는 기쁨도 있고.「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고 말하게도 한다. 아, 조선시대 창랑객(滄浪客)이라는 호를 쓴 어느 사람은 인생의 유한성을 제대로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2019 06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