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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이유

무릉사람 2019. 12. 12. 17:40

나는 이따금씩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사람들은 더러 내가 지식이나 교양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쓸 것이라 짐작할 것이다. 또 내가 전에 쓴 글 「공부는 왜 하나?」에서 밝혔듯이 글 솜씨를 뽐내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세상의 지극한 명문(名文)을 소개하거나 뛰어난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도 글을 쓸 수도 있다.


누구는 칼집의 칼이 우는 것처럼 글을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어 글을 쓴다 할 것이고. 누구는 자기가 살아있는 표시로 글을 쓰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전에 같았으면 주요한 것이지만 이제는 이것들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까닭은 위로 받고 위안 얻기 위함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나도 위로 받고 싶은 것이다.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문학이 인간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꽃을 피어왔다.」는 말은 곧 문학이 인간 치유의 힘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인생살이 얼마나 고달프고. 세상살이 얼마나 힘든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말은 안했지만 내가 얼마나 박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몇 번이고, 운명의 신이 나를 외면한다고 생각하기를 몇 번이었던가. 꼭 그리스 3대비극작가들의 작품이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만 위안을 얻는 건 아닌 것이다. 내가 쓴 글에서도 위안과 위로를 받는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는 대장부도 못되고 열사(烈士)도 못되지만 내 글에서는 대장부도 되어보고 열사도 되어본다. 나는 지금 여기 있지만 글 속에서는 이백·두보와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스코트와 눈 덮인 남극을 걸어도 보고. 한니발과 같이 눈 쌓인 알프스산맥을 넘어도 본다. 비록 지금은 아스라한 이름들이지만.


아, 그러고 보니 나만 내 글에서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인 문인들은 모두 자기의 시와 글에서 위로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플다크영웅전」에서 플다크가 「사기열전」에서 사마천이 영웅과 협객을 그리면서 위로를 얻었듯 우리는 동류(同流)인 것이다.


나는 글을 짓고 나면 내 글을 흡족히 바라본다. 아마 그것은 산모가 진통 끝에 아이를 분만하고 그동안의 온갖 고생을 새 새 생명에게서 위로 받는 그 마음일 것이다. 내가 내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은 모두 위로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2019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