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가 없는 시대
요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TV에서 보는 화려한 이력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들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깊이」가 없다는 말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 옛날에는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못한가?
왜 요즘에는 고원(高遠)하고 심원(深遠)한 생각들이 없는가?
왜 요즘에는 얕은 내를 건너듯하고 얕은 물을 보듯 하는 사람이 많은가?
왜 지금 사람들은 속이 금방 보이고 금방 밑천이 드러나는가?
물론 기아, 재해, 전란 등의 감소에 따른 승평시대(昇平時代)의 계속됨도 그 이유일 것이고, 위험회피 시스템의 정비. 물질적 풍요에 따른 긴장감의 이완 등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독서의 부재, 그중에서도 고전의 홀대라 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사람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주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생각의 게으름도 가져왔다. 즉 인터넷이 사람에게 생각이 숙성할 여지를 빼앗고 내면적 풍경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사람은 독서를 통해 삶이 사무치는데 독서의 부재는 사람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고 또 사람은 독서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자기를 돌아보는데 독서의 부재는 사람에게 성찰을 없애버렸다. 옛날 소진과 장의 등의 종횡가들은 시경 300 편을 달달 외웠을 뿐만 아니라 고사에도 해박하였고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은 「장자」와 「한유」를 천 번씩 읽었으며, 조선의 선비들은 「공자」와「맹자」을 천 번씩 읽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러니 책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책이었다.
지금 60세가 넘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이 소년기일 때 사춘기의 이성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연애편지를 많이 썼는데 나중에 보니 이 연애편지는 자신의 지식과 교양을 함양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좋고 멋진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서 그나마 독서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 연애편지마저 추억이 되어 끊어졌기 때문에 사람의 깊이마저도 그만치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의 글 중에서 당시(唐詩)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 당시를 호평한 어느 사람의 글이 좋아 여기 소개한다. 「당시에는 대장부의 기풍이 넘쳐나고. 애상(哀傷)은 호방(豪放)하며, 굴곡(屈曲)도 투철(透徹)하고. 사적인 것은 상큼하며, 은어(隱語)도 곱상하다.」라고. 어찌 이것이 당시에만 해당되겠는가. 「사기열전」은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품들, 」「오르스테이아 3부작」「안티고네」「엘렉트라」를 읽어도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균열을 가져와 우리도 하여금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렇다. 사람이 이 정도의 독서만 해도 벽을 맞대고 얘기하는 느낌은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 동네 앞의 냇물이 물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강물을 본 기분일 것이고. 야산만 쳐다보다가 태산을 보는 경험일 것이다. 삶이 느긋하고 지긋하니 독서의 결과일 것이고 깊이 슬퍼하고 깊이 기뻐하거나 크게 울거나 크게 웃으니 이 또한 독서의 결과일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니 까닭이 있고, 모든 죽어가는 것에 연민을 갖게 되니 이 또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사람에게서나 어느 삶에서 「깊이」을 느낄 때 우리는 옛날 사마천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시경의「큰 산이 있어 우러러보네. 高山仰止. 큰길이 있어 따라가네. 景行行止.」의 말뜻을 알게 될 것이고. 오늘날 도봉산 자락에 조광조를 받드는 도봉서원 앞의 냇가 바위에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글이 크게 음각되어있는 사연도 알게 될 것이다.
2019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