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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폭동이다.

무릉사람 2020. 5. 15. 20:28

어언 5·18을 40년 째 맞는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5·18의 성격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5·18을 폭동이라고 규정한다.


5·18은 과연 폭동인가? 즉 폭도들의 준동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내가 5·18을 폭동이라고 부르는 근거는 저들과 다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일으킨 운동, 시위, 봉기라도 실패하면 도마 위의 물고기처럼 난도질당한다.

폭도는 가벼운 것이고 비도. 역도. 역적으로 내몰린다.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고. 「권력규칙」의 맨 앞장에 있다.

그 폭도들은 실력이 모자라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고. 때가 아니라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며, 운이 나빠서 그렇게 불릴 뿐인 것이다.


나는 5·18을 폭동이라고 부르는 데서 역사의 발전과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진나라에 들고 일어난 진승의 난부터 로마의 노여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의 난, 황소의 난, 쯔빙글리의 난, 이자성의 난, 만적의 난, 홍경래의 난 그리고 동학란까지 난으로 규정한 역사적 사건들은 다 당시 권력을 쥔 자나 기득권세력들이 붙인 것임을 알아챘다.


똑같이 잘 살자는 것, 고루 잘 살자는 것, 공정하자는 것, 차별을 없애라는 것, 억압하지 말라는 것, 평등하자는 것,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염원이 무참히 짓밟히고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엉뚱한 이름으로 계속 불렸던 것을 알은 것이다.

물론 그 난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다 도적떼이고 폭도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신봉하며 제도화하고 있는 민주주의도 처음에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고, 지동설은 신성모독이며, 잔다크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여자였다. 3·1운동도 폭동이었고 참여한 사람들은 역시나 폭도였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려하고 누리고 있는 사상이나 제도도 대부분 처음에는 금기시 했고 불온시하고 위험시 당했지만 소수의 불순분자에서 시작하여 다수의 폭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쌓아진 것이었다. 기득권자들의 눈에는 현실을 바꾸고 무너지게 하는 것은 무리는 다 폭도들이고 도적들인 것이다.


돌아보라, 역사에 세계역사에 한국역사에 폭동이 없었고 폭도들이 없었으면 그 역사는 얼마나 무력한 역사이고 나약한 역사인가. 그 역사는 굴종의 역사이고 노예의 역사뿐인 것이다. 그들이 있어 정치적 정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부르짖음으로써 역사는 해갈을 하고 나팔수는 신이 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중에 새롭게 동학란을 동학혁명 또는 동학농민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에 개의하지 않지만 동학란으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난이라는 이름에는 피지배층의 고초, 민중의 아픔, 신음, 바람 등이 오롯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5·18도 항쟁으로 불러도 좋지만 저들의 시각으로 폭동이라고 불러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니체는「나는 피로 쓴 글을 좋아한다.」고 했다.

루쉰은 「먹물로 쓴 것은 피로 쓴 것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삼가 1980년 5월 어느 낙화시절에 쓰러진 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2020년 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