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왜 수사학이 필요한가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나, 표현법을 몰랐을 뿐이다.」라 하고 「글은 요점만 쓰면 되지 구구절절한 것은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좋은 글을 쓰려하는 인간의 본성인 향상성을 간과한 태도이고, 부분을 보고서 전체를 파악한 것처럼 보는 불완전한 의견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수사학에 그간 부정적인 것은 정치적 수사가 많아서 수사의 본래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며. 외교수사에서 보듯이 고도의 분별력이 요구되나 많은 사람들이 행간을 읽는 수고를 피하기 때문이지 결코 수사학이 나쁘고 잘못된 것은 아닌 것이다.
수사학은 그리스 로마시대 때 시민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자기변론이 그 시초이다. 오늘날 우리가 소피스트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궤변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학문의 진흥그룹으로서 그들은 「창의와 공유」라는 인문학적 가치에 충실하였으며 그들의 「객관성」대한 설득력은 오늘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수사학은 산문정신으로서 민주주의의 성숙과 그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 역사성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글 쓰는 사람은 자기의 글이 최고의 글이 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독자나 자기에 대한 도리이며, 노작(勞作)이란 말이야말로 글에 대한 가장 합당한 대우일 것이다.
문장이 화려하고 유려한 것은 번문의 폐해도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지적작용이며 낭만주의 사상과 부침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기능이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옛날 위진 남북조 시대나 통일신라시대 때 변려문이 유행하여(최치원의 토황소격문) 한퇴지에 의해서 견제를 받았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풍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아날로그적 성격 때문인데 오히려 지금이 나름대로 가치가 더 있다고 볼 것이다. 세상에는 직설적 화법보다 완곡한 화법이 더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단도직입적이라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닭을 죽여서 단 번에 수 천 개의 알을 노리는 것의 다름 아니다.
어미 소가 송아지를 혀로 핥듯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감싸듯 하는 것이 수사학이다. 고려 때 서희가 세치 혀로 강동6주를 회복했고, 제갈량의 연환계도 수사학의 성공이었다.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 로마의 키케로나 세네카, 독일의 피히테, 중국 춘추전국시대 소진이나 장의가 이름이 난 것도 그들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쏠리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mind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력은 수사학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조선시대 사간원도 넓은 의미의 수사학적기관인 것이다.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쓰는 나라의 사람들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문화적 수준이 높다는 일반론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수사학은 글 쓰는 사람의 강력한 병장기이다. 글자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고. 글자들을 다소곳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토씨 하나의 첨삭, 단어 하나의 선정에 밀 퇴(推)자를 쓸 것인가 두드릴 고(敲)자를 쓸 것인가 고민하는 또 한 사람의 가도(賈島)가 되게 하며, 이것은 또 얄궂은 신탁(운명)을 설정함으로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같이 사는 오이디푸스를 통해 「중층적 비극」을 보여주는 현대의 소포클레스가 되게도 한다. 이렇게 수사학은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그 기기묘묘한 자태로 우리의 넋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미녀만 성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기울게 하는가. 수사학도 그런 것이다.
2009년 현충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