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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의 힘

무릉사람 2020. 9. 13. 15:57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소원을 묻자, 그는「대왕으로 인해 햇살이 가려지므로 조금 옆으로 비켜서주는 것뿐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왕의 옆에 있던 신하들은 디오게네스의 무례한 말에 긴장했으나 하지만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디오게네스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대왕의 다음 말에 그들은 안도하였고 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왕의 말은 쌍방 모두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말이었다. 수사학(修辭學)의 힘인 것이다.

 

수사학은 말(글)의 전달력을 높이고 말(글)의 아름다움을 쫓는 장치이다.

수사학은 언어가 지닌 힘에 착안하는 것이고, 언어를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게 한다. 수사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하고, 미물(微物) 심지어는 식물하고도 대화하게 한다.

수사학이 없는 말(글)은 맨송맨송하나 수사학이 있는 말(글)은 마음을 졸이게 된다.

 

수사학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말하느냐이다. 따라서 무엇을 중시하고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가 관건이 된다.

수사학은 문식(文飾)으로서 사실인 실질과 더불어 문질빈빈(文質彬彬 내면과 외양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말의 바탕이 된다.

수사학의 장기(長技)는 함축, 비유, 완곡, 대비이고 그 밖의 방법인 반어. 도치, 반복, 나열, 점층, 생략 등으로 말(글)에 생기를 불어넣고 광채를 입힌다.

사람들은 「문장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 그 속에 빠져들고 싶다.」고 말하는데, 수사학의 힘인 것이다.

 

수사학은 마치 짧은 고삐로 야생마를 길들이고, 쇠를 종으로 만들어 웅혼한 소리를 내듯 그런 역할을 한다.

일자사(一字師)라고 어느 당시(唐詩)에서 수지매(數枝梅)를 일지매(一枝梅)로 바꾸니 이른 봄의 분위기가 더 완연한 것처럼 글자 한자 고침에 따라 뜻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것도 수사학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 「말 한 미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것도 수사학을 빼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감동을 주는 글을 명문(名文)이라 하며, 논리정연하여 진실에 입각해서 사람의 이성을 설득하는 것이고 글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수사학인 것이다.

 

「형식 없이 내용 없다.」는 말이나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도 모두 수사학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수사학은 말(글)을 조금 비트냐 많이 비트냐의 차이이고. 수사학의 단점으로 미사여구(美辭麗句)나 외화내빈(外華內貧)을 말하나 이는 미인박명(美人薄命)처럼 수사학의 숙명이다.

 

무엇이든지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의 존재나 「되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 反者道之動」이라는 노자 40장의 말에서 수사학은 이미 오래전에 세계의 모순을 간파하였고 어떤 논리나 어떤 논변이라도 그 끝은 자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수사학은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난처한 입장에서 벗어나게 하며,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도 하고 긴장을 조성하기도 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옛날의 뛰어난 시인이나 문인들은 다 수사학에 정통하였거나 천부적으로 수사학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옛날 유세객(遊說客)이었던 소진과 장의는 수사학의 대가(大家)였으며, 27살의 제갈공명이 유비를 만나 천하3분(天下三分)의 계책을 설파한 것도 수사학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수사학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니 로마의 키케로는 수사학 때문에 고귀한 신분이 되었고 삼국지에서 공융과 예형은 수사학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다.

 

역사상 수사학의 장점을 알고 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사람은 세익스피어이다.

그는 「플다크영웅전」을 텍스트로 하여 희곡 「울리어스 시저」에서 수사학의 백미(白眉)를 창조한다. 부르투스가 시저를 죽이고 나서「나는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시저를 죽였다.」는 말과 안토니우스가 시저의 주검을 가리키며 「부트투스는 훌륭하고 그를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내가 아는 시저를 말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은 과히 수사학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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