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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무릉사람 2021. 2. 27. 22:14

모름지기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따를 전철(前轍)이 있고 피할 전철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따를 전철이 태산(泰山)고 북두(北斗)인 것이다. 한 때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헤로도토스를 들었지만 지금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다룬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해서 역사학의 아버지로 부른다. 그만치 역사는 고쳐 쓸 분야가 제일 많다고 볼 것이다.

 

사람이 역사에 정통하게 되면 일의 성패와 국가의 흥망을 알 수 있고. 세상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임에 알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게 된다. 구름 같이 살고, 바람 같이 살며, 흐르는 물과 같이 살겠다면 반드시 투철한 역사의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역사는 원인을 밝히는 학문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은 역사는 모로 가든 질러가든 반드시 현재적 의의(現在的 意義)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평가할 때 동기에 함몰되어 결과를 경시해서도 안 되고, 결과에 치우쳐 동기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사마광이 그의 역사서를 거울 감(자를 써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역사는 현실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당대 현실은 역사의 연속이기 때문에 역사란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역사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취사선택(取捨選擇)된 것이고. 재해석된 것이다.

역사란 우리 앞에 원자료만 놓인 매우 무미건조하고 불완전하며 모호한 자료 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되어 있고, 흑막이 누락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원자료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와 문학사이의 불명확한 영역을 자신의 장르로 삼아 로마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이고.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고,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역사가가 처한 사회적·역사적 환경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지인논세(知人論世)란 말이 있다. 사람을 알려면 그가 처한 시대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의 다음 말은 역사학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역사학의 대상은 본래 인간이며, 시간속의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고 하면서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닌 인간 중심의 역사를 강조하였으며 또한 과거와 현재는 얽혀 돌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란 헤로도토스가 한 말 인간의 운명은 수레바퀴 같아서 돌고 돌아 같은 사람에게 계속하여 행운을 베풀지 않는다. 역사 1가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루소는 역사란 많은 거짓말 중에서 진실과 가장 비슷한 거짓말을 골라내는 기술이다.’라고 하고,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를 한 시대가 그 전시대에 있었던 사건 가운데에서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건의 기록이다.’말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에 대해 역사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한 없는 재부(財富)를 지니는 것도, 전투를 하는 것도 역사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행하고 차지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인간이다.’라고 하였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미셀 푸코는 흔히 역사는 사건이 전개되고 변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관한 말, 담론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말과 사물의 관계에서, 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인 시각을 거부하고 사물을 서술하는 말이 달라져온 궤적을 추적해야 한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역사성과 역사를 구분했는데, 그 이유로서 역사성이란 역사학의 전제조건이다. 역사성을 떠난 역사학이란 종이뭉치와 다름없다. 단순한 문헌기록만 있는 역사에는 문제도 논쟁도 없으니 역사성을 획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역사란 흔히 우연한 모멘텀을 통해 발전한다고 한다. 또한 그 우연은 흔히 무의식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어떤 일이 의도와는 다르게 진전되는 것. 상업적인 목적으로 고안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중세시대를 마감하게 할 줄을 아무도 몰랐다.

 

역사가 변화하거나 전개되는 과정은 흔히 예측할 수 없는 깊이와 폭을 갖는다고 한다.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합리성이라는 것도 당시 사람들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그때로부터 100년이나 1000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표면적으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어보였던 사건들은 앞뒤로 연결되어서 그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역사란 아무리 막강한 제국이라 해도 그야말로 엉뚱하거나 하찮은 사건으로 멸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없이 보여준다. 로마제국과 명나라의 멸망.

다음의 말은 역사에서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그러나 나 한사람의 힘만 가지고서는 3000년 중국 역사 전체를 고쳐 쓸 수 없다. 여기에서 고쳐 쓴다는 말은 고증하여 연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사료를 재배치하여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역사에서는 어떤 관점이나 어떤 시각애서 보느냐가 학문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

 

역사가 미심쩍을 때 우리는 역사의 진보라는 법칙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역사란 우리가 그려놓은 도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을지라도 스스로의 역속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승리라는 하나의 의미만으로는 수렴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한다.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을 사마천은 보여주었다. 헛되이 미화하지 않고, 나쁜 것을 숨기지 않는다. 不虛美 不隱惡.

이를 사람들은 실록정신이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역사는 해석과 해명의 작업을 꾸준히 수행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역사의 객관적 진리는 믿는다.고 했다.

로자의 판단은 정확할 것이다.

 

역사에는 선두주자의 페널티(penaly)가 있는가 하면 후발주자에게는 베네핏(benefit)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때론 혁명이 문명 역전의 계기가 된다고 한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잉글랜드에서 장차 세계 역사의 행로를 바꾸는 최초의 의회가 성립된 배경이 그렇다고 한다.

토머스 모어는 인클로저(enclosure)운동이 야기한 현상을 개탄하면서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지만 영주들의 그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동 때문에 영국은 유럽에서 맨 먼저 자본주의로 국가로 치고 나갈 수 있었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역사적 평가가 당대의 평가와 다른 것. 진리는 구부려져 간다. 역사의 치유. 역사적 합리성.

 

역사에는 지름길은 있어도 비약이나 생략은 없다고 한다. 예로 서양 열강의 침략에 따른 청나라와 조선의 고통.

또 역사에는 원인과 결과만 있지 기적은 없다고 한다. 그 예로 히브리인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각별한 열성으로 오로지 유일신 야훼 하느님을 숭배한 것을 든다. 히브리인은 생존의 물리학에서는 약했을 수는 있지만 형이상학에슨 강한 민족이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는 햇빛에 노출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노출되면 신화가 된다.고 하고, 신화란 새삼 무엇인가? 일종의 유언비로를 신화작용((R, 바르트)이라 부르거니와 나는 이 신화의 기록자로 자처한다.고 했다.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 때 풍도가 재상으로 5왕조 8성씨를 섬긴 것은 나그네가 객방(客房)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사람은 구름에서 세상을 본 것일 게다.

역사를 알고 여행을 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람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주체-절대정신이나 인간- 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해 정의되고. 그것의 변화와 대체과정에 불과하다고 역사를 전도시킨다.

구조주의 철학자 알튀세르는 역사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고 역사를 해체해 버린다.

 

강만길은 역사학이 아카데미즘(순수 실증주의)에 침전하게 되면, 일제 강점기나 민족 분단시대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거나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근대사와 현대사를 기피하기 쉬우며 따라서 학문은 현재성과 대중성을 잃게 된다.고 한다.

 

반희사연(班姬辭輦)라는 말이 있다. 성제(成帝)가 반첩여에게 수레를 같이 타자고 하자 훌륭한 임금 겉에는 충신이 있고, 혼군(昏君) 옆에는 미녀가 있다,며 수레 타기를 거절한 것인데, 역시 역사가의 집안은 다름을 알 수 있다반첩녀는 역사서 한서(漢書)를 지은 반고와 여성의 지침서 여계(女戒)를 지은 반소의 고모할머니

 

 

2021,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