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뛰어난 사람이 태어나면 고향 산천의 정기를 받아서 그렇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은 땅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중환이 조선의 땅을 논한 택리지(擇里志)는 다소 인위적이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천시(天時)는 사람에 따라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리(地理)는 사람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일찍이 유교의 하늘과 사람이 서로 조응한다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은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사상으로까지 발전한다. 허균의 스승 이달이 홍주 관기(官妓)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날 때 강물이 마르고 초목이 시들었다는 이야기에서는 자연이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서로 호응한다는 사유(思惟)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리적 조건이 사람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말은 객관적인 관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인도라는 신화의 땅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석가라고 해도 불교를 창시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독일에서 철학이 발달하고 철학자가 많이 나온 이유가 궂은 날씨 때문이라는 말에서는 사람의 존재와 인식은 지리와 궤를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나는 젊었을 적 사우디 아리비아의 수도 리야드 인근에서 신리야드 공항건설 노동자로 1년을 지낸 적이 있는데, 시간이 되면 앞에 펼쳐진 사막과 광야, 그리고 독산(禿山)을 찾아 예수의 행적을 흉내 냈다.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념에 젖게 하는 땅!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땅! 종교가 나올 마땅한 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의 영향을 받아 인물이 제일 많이 나온 곳을 꼽으라면 단연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일 것이다. 통영은 수려한 다도해를 끼고 있어 풍광도 압도적일뿐만 아니라 인심도 좋고 시정(詩情)도 넘쳐나는 곳이다. 괜히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전혁림이 나온 것이 아니다. 백석의 첫사랑 「란」도 통영이 아니던가.
다음으로 강원도를 들 수 있다. 양구에서 태어나 당시 풍미하던 서양화풍 대신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그림들, 처 김복순을 모델로 한 「절구질 하는 여인」 등을 그린 박수근이나 봉평에서 태어나 「마치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핀 메밀꽃」이란 표현과 허생원. 충주댁. 동이 등의 아스라한 이름들을 끌어온 이효석은 순박한 땅이 아니라면 어림없었을 것이다.
중국 쪽을 봐도 그렇다. 소동파의 기개와 문장은 그가 사천이란 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교의 발상지인 청성산(靑城山)이 청두에서 멀지 않고 불교의 성지 어메이산(峨眉山)이 있어 청두 남쪽 미산 출신의 소동파는 도교와 불교를 통섭할 수 있었으니 소동파의 명문은 청두의 자연과 문화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아버지의 뒷모습」이란 수필로 널리 알려진 주자청은 양주라는 고도(古都)의 유려한 산천과 농후한 문화 전통 속에서 소년기를 보내며 성격형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온화한 성품과 자연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 풍부한 상상력, 다정한 감성세계는 모두 중국 남방 양주의 그림 같은 자연과 정취.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해진다.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W,B 예이츠도 그렇다. 그의 망향시(望鄕詩)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도 그가 외갓집이 있는 슬라이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수 물 찰랑이는 소리를 듣나니/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라는 시어(詩語)도 나오지 못하고 정지용의 향수와도 비교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은 사람의 심성을 키우고 가꾼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사람을 한계 짓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고유성과 독자성을 띠게 하고 끝내는 보편성을 얻게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나라이다. 자연에 맡겨 천성을 기르고 완미(玩美)하기에 딱 알맞은 땅이다. 우리는 복 받은 것이다.
2021,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