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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최재형」의 대권행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무릉사람 2021. 7. 18. 22:14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하 윤씨와 최씨로 약칭)이 드디어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 검찰총장직과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기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지만, 윤씨와 최씨의 정치활동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많은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윤씨와 최씨의 정치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당연히 정부·여당은 비난의 소리를 하지만 반대당과 수구언론(경제지와 종편 포함)은 환영 일색이고 여론은 갈라진 채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정파적 문제에 그치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일인가. 아무리 문재인 정권이 집값 폭등 등으로 민심을 잃었다 하지만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반드시 가려져야 한다.

 

윤씨와 최씨가 정치를 하는 것은 자유이다. 엄연히 대한민국 법령에는 결격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공무담임권이 있고 피선거권이 있다. 그리고 왕후장상(王侯將相)에 그 씨가 있느냐?는 아주 오래된 말에서 알 수 있듯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부류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고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역졸출신 이자성이 대순황제를, 무장출신 이징옥이 대금황제를 칭한 것처럼. 그러나 윤씨와 최씨는 아닌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의 단맛을 빨다가 끈 떨어진 연같이 된 사람이나 홍경래같이 지역차별을 받은 사람이나 식민지 조선 백성이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것은 당연해도 이 정권에서 고관을 지낸 윤씨와 최씨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윤씨와 최씨는 2가지 큰 착각과 혼동을 하고 있다. 하나는 사정기관인 검찰과 감사원의 수장으로서 중도 사퇴하고 곧장 정치판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 어떤 국가기구나 기관보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켜야 할 검찰과 감사원에 두고두고 나쁜 선례를 만든 것이다. 앞으로 검찰이나 감사원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다. 이제 그나마 있던 검찰이나 감사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그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라는 개인의 부침(浮沈)과는 상관없이 양 기관은 존속하는데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것은 또 검찰·감사원·경찰·국세청 같은 권력기관의 장이 공명심에서 정부와 맞짱을 뜨면 스타가 되어 제2의 윤석열 제2의 최재형이 나오게끔 만들었다. 윤씨와 최씨는 정치활동의 변으로서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민주주위를 위해서 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화국의 중추기관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 김상헌과 삼학사(三學士)등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구해준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격해서 청나라를 섬기느니 인조임금을 비롯한 군신(君臣)이 모두 옥쇄하자고 주장한다. 죽음으로서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고 은혜를 저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거의 망할 뻔 한 나라를 살려준 은혜보다 더 크고 강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지기(知己)이고 발탁인 것이다. 국가를 살린 은혜는 머리로 아는 것이지만 나를 알아주고 써주는 것의 은혜는 가슴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 격과 질이 다른 것이다. 나라를 구해줬다고 목숨을 내놓은 경우는 없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얘기나 사례는 많다.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촉나라와 유비·유선부자에게 충성한 것은 27살의 백면서생을 47세의 유비가 찾아와 -그것도 세 번이나 -선비로 대해주고 높이 썼기 때문이다.

 

이 정권에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지낸 사람들이 몸담았던 정권을 비난하고 상대당에 몸담는 것은 정치도의가 있다면 정치도의가 아니고. 인간적으로도 도리나 도의가 아닌 것이다. 일반인은 몰라도 윤씨와 최씨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줄곧 우물물을 먹다가 떠나면서 침 뱉으며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고. 효자는 어미가 박색인 것을 탓하지 않고. 강아지는 주인집이 가난해도 나무라지 않는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 보통적인 인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느 옛사람은 인정(人情) 에 반()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다.고 했고. 오늘날에는 어린아이도 한 번 배신하면 두 번, 세 번 배신함을 잘 안다. 백아는 자기 음악을 알아주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수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윤씨와 최씨는 말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하고. 구제도를 혁파하겠다고. 그러나 제 3의 길이 아닌 기존 정당, 그것도 친일·독재·기득권자들의 당이고. 국정농단세력들의 당에 들어가 저들의 엄호와 비호를 받는 것을 보면 윤씨와 최씨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 레토릭일 뿐 단지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취하는 반문집단이나 반문집합체이지 자율적이고 자생적이고 자결적인 정치결사는 아니라 할 수 있고. 더욱 경국(經國)이나 제민(濟民)의 정신이나 자세는 아닌 것이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하면 윤씨·최씨 개인의 정치적 야욕인 것이다.

 

-살펴보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넓고 하늘 밖에 또 하나의 하늘이 있음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세상을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나는 코끼리의 일부를 만질 뿐이고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자이다.

 

역사적 합리성이란 말이 있다. 진리는 구부려져 간다. 당대의 평가와 역사의 평가가 다르고, 오늘은 실현 못했지만 100년 더 멀리 1000년 후에는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오늘의 혹독함이 다음에는 보람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역사는 너무나 많은 우연과 무의식이 작용하며 정() () ()의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지금 내 눈이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의심할 수 있는데, 어떻게 단정하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들어도 못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는 것이고,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정치는 본질을 좇는 것이다. 영원히 현상인 것이다. 현상은 날씨와 같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준거가 없으니 이기면 관군이고 지면 역적이라는 규칙이 지배한다. 아무리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정치판에 발을 디디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늪지의 사람이거나 진흙탕 속의 사람이 된다. 우리 같이 보통사람이나 하는 것이지 한 기관의 수장을 한 사람들이 할 짓은 아닌 것이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간 백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름은 얻었지만 허명(虛名)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바꿀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딱 하나가 있으니 곧 목숨이다. 그 외에는 죄다 바꿀 수 있고 대신할 수 있다.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은 나만 정의롭고,」 「나만 깨어있으며,」 「나만 할 수 있고,」 「나만 깨끗하다.고 한다. 얼마나 큰 오산이고 오판인가. 세상에는 천하없어도 때가 되어야만 되는 것이 있고.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고 더 나은 경우도 종종 있다. 유위(有爲)에 대한 무위(無爲)의 장점이라고 가만있고. 점잖으며 반듯한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역사에는 개인적 덕목이 공공의 영역에서는 재앙이 되는 많은 경우를 보여준다. 프랑스 대혁명 때 쟈코뱅당의 기독교인 로베스 삐에르는 개인적으로는 훌륭했지만 공공의 영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끝내는 자신도 단두대에 서고 혁명을 망쳤다. 신념도 그렇다. 신념도 신념 나름이지 세상에는 나쁜 신념도 많이 있다. 히틀러나 스탈린도 신념의 사람이었다. 오늘날 사회가 혼란하고 정치가 문란한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누구라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옛날부터 이 땅은 선지자를 핍박하고.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이 나사렛 같은 곳이다. 지금도 집값 폭등에 뒤떨어질 가봐 조바심 내고 안달하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누구도 이 사람들을 깨우쳐 주거나 만족시켜 줄 수 없다. 차라리 바위에게 설법하고 새에게 설교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고. 물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그 국민 수준의 합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빅토리아 여왕시대, 워싱턴 대통령시대, 처칠 수상시대를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옛날 사람들은 벼슬살이의 어려움을 환해(宦海)라고 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과 대비되는 말이다. 지금은 사유할 줄도 모르고 절제도 모르는 시대이다. 또 다른 어느 옛사람은 권력과 명예를 다 가지려는 사람을 일컬어 도적중의 도적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 중에 도적은 누구인가. 한 정권에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같이 한 사람은 통렬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숙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찰과 감사원이 제 본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2021,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