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린 시절 -독서 이야기-
「책을 만권 읽으면 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이 있고, 「어렸을 적 읽은 책의 감동이 평생을 간다.」거나 인격 형성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어린 시절 독서의 중요성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변변치 못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옛사람들의 독서법을 닮으려 하고,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도 「독서인」이라는 것에 대견해 한다. 그것은 이덕무가 배가 고프면 맹자란 책을 팔아 쌀을 사고, 추우면 장자나 사기란 책을 펼쳐 이불로 삼는 것을 답습하는 것이다.
스스로 발분하거나 스스로를 단속하고,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는 것도 독서에 근거한 것이다. 앉아서는 세계의 풍광을 즐기며 눈을 감으면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역시 독서에 힘입은 바다.
그 행운의 시작은 1965년 진부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정지선 교장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새로 부임하였는데,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었다. 오시자마자 하신 일이 오래된 교사(校舍) 바로 뒤 언덕에 있는 새 교사의 교실 2개를 터서 도서관을 만든 것이다. 나는 도서위원까지 되어 그 혜택을 오롯이 보았다.
나는 이때부터 학교공부는 학교에서만 대충하고. 밤에는 2〰3권의 책을 호롱불 밑에서 까까머리를 그슬리며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졸업할 때까지 읽으니 명작소설, 위인전, 세계역사, 우리나라 역사 등 웬만한 책들은 거의 다 읽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읽은 것을 밑천으로 하여 우려먹을 정도다.
그때 독서는 내게 경이였고. 황홀이었다. 물론 어린 마음이지만 그렇게 책에 파고든 것은 현실에서 만족 못하는 것이 있기도 했겠지만 독서는 「눈뜸」이고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었다. 마치 핍박하는 사울이 전도하는 바울이 되고, 천동설이 지동설이 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건이고 변화였다.
내가 그때 진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정지선 교장 선생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행운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독서와는 거리가 먼 인간일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 것이며, 영원과 우주를 향한 그리움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오래전에 어느 글에서 「조물주는 보통의 사람에게는 금은보화를 달라는 대로 주지만 정말 아끼는 사람한테만은 한가(閑暇)함을 준다.」는 대목을 보았는데. 한가함 대신 독서를 집어넣어도 뜻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22,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