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유품 정리하듯 살 때
지난 4월의 끝자락 어느 날, 같은 동작구에서 다른 동(洞)으로 이사를 하였다. 대개 이사를 하면 버릴 것이 많은데, 이번에는 특히 더 많았다. 그것은 나이 듦에 따른 깨달음도 있지만 잇단 지인들의 부음이 내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옛글을 좋아하는데서 알 수 있듯 오래된 것을 아끼고 잘 간직하는 편이다. 벌써 30, 40대 된 자식들의 어렸을 적 그림이나 일기장 또는 상장 등을 지금도 보관하고, 내 젊은 날의 편지나 사진 등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지금 내가 아끼는 저것들이 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과연 저것들이 나처럼 자식들에게
까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일은 거리에 따라 관심도 비례하는 것이다. 풍비박산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할 것이고, 내 살았을 적 죄다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상궤(常軌)란 생각을 하였다. 점차 신변을 정리하다가 마지막에는 돈 몇 푼 장례비로 남길 뿐이다.
노자는 도덕경 48장에서 ‘지식은 날로 늘리고 도는 날로 줄인다. 爲學日益 爲道日損’고 하여 인간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그런데 나부터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간단, 간결, 간소함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자유케 한다고 볼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을 생활신조로 한다. 관점의 차이이겠지만 나는 무슨 기념관― 특히 정치인이나 문학인― 에 가게 되면 일치감을 못 느낀다. 혹시 그것들은 황지(黃池)나 화진포(花津浦)의 연못이나 호수에서 극구 돌아보지 말라 했는데도 돌아봐 돌이 된 며느리 같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손때가 묻고, 추억이 담기고, 노력한 것이나 곳곳에서의 한숨과 탄성, 기쁨과 슬픔까지도 성경에서 말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 해당될 것이다. 소풍객은 집으로 돌아갈 때 꽃반지나 화관(花冠) 등의 장식품은 버리는 법이다.
2023,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