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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초심(初心)을 잃을까?

무릉사람 2023. 6. 4. 20:13

새집으로 이사 온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쓰던 유선 청소기는 오래 되어서 무선 청소기로 바꿨는데,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걸리적거리는 전기 줄도 없고, 가벼운 데다 소리도 작다. 거기에다 탐조등 같은 것이 앞에서 비추니 아주 미세한 먼지까지 다 빨아들이는 것이 훤히 보인다.

 

나는 가만히 청소기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빗자루를 쓰다가 유선 청소기를 썼는데, 대단히 편리했다. 그런데 무선 청소기는 유선 청소기를 훨씬 뛰어넘는다. 나는 이 사실에서 사람이 편안해지면 왜 더 편안해지려고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일찍이 중국 한나라 선제(宣帝)때 태자 스승인 소광(疏廣)은 이런 말을 하였다. ‘현명한 사람도 재물이 많아지면 초심을 잃는다. 賢而多財損其志. 소광은 사람이 재산이 많아지면 총명이 흐려지고, 현실에 안주하며, 물질과 정신은 반비례함을 본 것이다.

 

여기에서 뜻이나 초심은 순수함이나 순박함을 말한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과 분리되기 이전의 인간 상태이고, 최영장군 아버지의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의 당부 등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부정(不正)한 것은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젊은 날의 다짐이다.

 

그러나 한 번 안락(安樂)함을 누린 사람은 자기는 억울하고, 이것쯤은 괜찮겠지.’ 하면서 한 없이 자기에게 관대하게 된다. ‘가 고기 맛을 알면 절간의 빈대가 남아있지 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일단 욕망이라는 이름의 봇물이 터지면 그때부터는 가속도가 붙는다.

 

은잔을 쓰면 금잔을 쓰고 싶고, 상아 젓가락을 쓰면 상아 숟가락을 쓰고 싶어진다. 전에 하지 않은 기화요초(奇花瑤草)를 밝히고, 골동품에 빠지며, 장식품에 신경을 쓴다.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물질 위주로 생각하기 쉽지 인간위주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사람이 재산이 많아지면 재물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결국 재물의 노예로 살게 된다. 일의 성패(成敗), 조짐의 길흉(吉凶), 국가의 흥망(興亡)에 밝은 사람도 재물이 많아지면 그 예지력을 잃게 된다. 늠름한 기백, 드높은 기상, 굳센 기개도 재물이 쌓이면 수증기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초심을 잃었다고 자책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이따금씩 초심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 시대에는 아주 귀한 것이다. 어느 동화책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이 재상이 되었는데 다락방 깊숙이 그때의 낡고 허름한 옷을 간직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초심을 지키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2023,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