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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의리(義理

무릉사람 2023. 8. 10. 22:35

의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살면서 마땅히 지켜야하는 도리라고 나와 있다. 요즘은 의리를 삐딱하게 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의리는 평생의 과제였고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유교는 가히 의리의 종교이고 의리의 학문이었다.

 

그렇다면 의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은정(恩情)에서 오기도 하고, 가치의 공유와 연대에서도 오기도 하니, 그것들이 사람을 감복시키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살펴보면 인간관계에서 의리만큼 센 것도 없고, 부드러운 것도 없으며,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과연 옛사람들은 어떻게 삶속에서 의리를 구현했을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사지(死地)에 뛰어들게 하고, 독배(毒杯)를 들며,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유방백세(流芳百世), ‘아름다운 이름이 백세에 전해진다.’는 말은 의리에 합당한 말일 것이다.

 

자기를 국사(國士)로 대우한 지백(智伯)을 죽인 조양자(趙襄子)를 죽이려 한 예양(豫讓), 일개 백정을 알아준 엄중자(嚴仲子)의 원수인 한나라의 재상 협루를 죽인 섭정(聶政), 연나라 태자 단()의 알아줌에 진시황을 죽이려고 떠나는 형가(荊軻)알아줌 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신라 화랑 사다함은 같이 죽기로 맹세한 무관랑이 병으로 죽자 매우 슬퍼하더니 7일 만에 따라 죽는다. 궁궐 사인(舍人)인 검군은 동료들이 곡식을 훔치자고 해도 뿌리쳤는데, 나중 그들이 고발할 것을 염려하여 독주를 건네자 마시곤 죽는다. 손가락을 걸었고,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인 것이다.

 

소설 도화선)에서 이향군은 후방역과 첫정을 나눈다. 완대성이 겁탈하려하자 그녀는 항거하다 넘어져 머리에서 흘린 피가 부채에서 복숭아꽃처럼 피어난다. ‘묏버들· · ·’ 시조의 주인공 홍랑은 시우(詩友)와 정인(情人)으로 품어준 최경창이 죽자 자색을 망가뜨린다.

 

나도 이제 종심(從心)의 나이가 되었으매 지나온 의리를 생각하고 남은 의리를 헤아려본다. 의리란 것도 나이 먹으면 유품을 정리하듯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나에게는 차마 뗄 수 없고 버리지 못하는 의리가 남아있단 말인가?

 

이제는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도원결의 따위는 안중에 없고. 고흐와 매춘부 시엔의 사랑보다는 훨씬 떨어진 하룻밤 풋사랑도 남아있지 않다. 평생을 포의(布衣)로 살았으므로 나라를 위해 순절할 의리는 없지만 배고팠던 한신이 주먹밥 한 덩어리를 준 빨래하던 부인을 잊지 않은 의리는 기억해야 한다.

 

의리는 온정주의(溫情主義)와는 다르다. 지금도 내가 챙겨야 할 의리가 남아있다면 첫 번째가 승잔거살(勝殘去殺)의 의리이다. 공자로부터 잔혹한 짓을 하지 않으며 살자는 입에 담지도 않는다.’고 배워 조선의 선비들이 깊이 동의하던 의리 말이다.

 

두 번째가 광무제가 과부인 누나 호양공주를 송홍에게 시집가게 하려하자, 송홍은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며 극구 거절한다. 그 조강의 의리 말이다. 세 번째는 볼 품 없는 나를 수필가로 받아준 한국수필가협회이다. 행사 때마다 부지런히 따라다니는 것이 의리라고 생각한다.

 

2023,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