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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필수요건

무릉사람 2024. 5. 4. 11:25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일찍이 진승이 왕후장상(王侯將相)에 그 씨기 있느냐?’고 말한 것처럼 정치인도 씨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란 가치를 지향하고 분배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류의 사람이 정치를 해서는 아니 될까?

 

그런 면에서 어느 역사학자의 다음 말은 아주 경청할만하다. ‘정철은 정치에 필요한 관용과 포용력이 없는 성품을 지녔기에 동·(·西)양파로 갈라져 당쟁이 일어나자 투사(鬪士)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철은 성격상 학자나 문인에 합당했지 정계에 나설 인물은 아니었다.’.

 

관동별곡〉 〈성산별곡등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빛나는 정철을 두고 한 말이다. 정철은 정여립모반사건때 위관(委官)을 맡아 애꿎은 선비 1,000여명을 죽였다는 악명을 남긴다.

 

정치를 뜯어보면 도덕 강론도 아니고, 독립운동도 아니다. 주고받는 것이고, 타협하고 절충하는 것이다. 정의감이 투철하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독선적인 사람에게도 맞지 않다. 자칫하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자 나라의 불행이라는 것을 정철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시인 푸시킨이나 바이런을 연상(聯想)해 봐도 될 것이다.

 

역사에서 관용과 포용심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로는 삼국지의 조조와 로마의 시저를 들 수 있다. 조조는 원소와의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겨우 승리를 한다. 원소 진영으로부터 많은 비밀문서들을 입수하게 되는데 조조의 측근들이 원소와 내통한 것도 많았다. 다들 그것을 밝혀 처벌하자고 했지만 조조는 원래 나의 군대는 원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라 하면서 문서들을 죄다 불사르라고 명령한다.

 

시저는 폼페이우스와의 싸움에서 힘든 승리를 한다. 공을 세운 장군들이 폼페이우스의 군사들을 모조리 살해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저는 주군에 충성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 말하면서 그들을 모두 풀어주라고 지시한다. 두 사람 다 조직을 안정시켰고 단련시켰다.

 

그렇다면 조조나 시저와 같은 관용의 정신이나 포용력은 어디서 올까? 그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스토아학파적 정신과 만물은 대등하다는 장자적 철학이 뒷받침하고 부드러움, 배려, 여유로움 등의 천성적 품성에서 기인한다 할 것이다. 또 오랫동안의 수양과 성찰의 결과로서 일원론적이거나 이분적인 세계관이 아닌 공존(共存), 공생(共生), 공영(共榮)의 다원적이고 다면적인 세계관에서 올 것이다.

 

그저 그런 정치인이나 고만고만한 정치인으로 남지 않고 높이 나는 새 같은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도량과 아량이 관건이고 핵심인 것이다. 강직하고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이 다른 직역에서는 미점이고 강점이지만 정치에서는 마이너스인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판·검사나 언론인이 정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고 본인들도 이를 내키지 않는 정치문화가 있다고 한다. 인과관계(因果關係)를 따지며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펴야하는 사람에게는 정치가 적합하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

 

정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다. 관용과 포용심은 작비금시(昨非今是), 전날의 그름이 오늘날에는 옳음이 되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통하는 덕목이고, 천택납오(川澤納汚), 뛰어난 정치가는 남의 과실은 허용하고 본인은 치욕을 참는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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