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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죄(感天罪)

무릉사람 2024. 8. 22. 21:52

                                                                       가난한 젊은이의 술회(述懷) (1)

 

                                                                                       

 

사람이 살아가자면 갖가지 죄를 짓게 되고, 세상에는 죄의 종류도 많다. 사회적으로는 법규범이라는 것이 있어 그 질서를 침해하면 벌을 받는 죄가 있는가 하면, 인격적으로는 양심문제인 선량한 죄책감도 있다.

 

앞의 죄는 사회 공동생활상 준수해야 할 법을 어겼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제재를 당하지만 실상 그 속을 살펴보면 정상을 참작하고 동정을 구할 것도 더러는 있다. 뒤의 죄는 외양적이나 반사회적인 것도 아닌 순전히 일개인의 내면시비(內面是非)로서 그 사람의 세상을 보는 눈과 도덕성의 높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짓지 말자는 것은 사회 법적인 면에서도 타당하지만 그것보다는 가슴속의 재판에서도 떳떳하고 깨끗해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늘을 무서워하고 우러러 받드는 데, 이 하늘이라는 것이 사물적 의미의 천공이 아니라 추상적 의미의 인륜, 진리, 민심 등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하늘의 뜻, 옛적 길을 따르기 위해 순교한 이도 있고 왕위를 박찬 이도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숭고하며 장엄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머리, 그 머리 위에 하늘- 정당한 길은 사람의 행위 기준이 되기도 하고 지향할 목적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처음 예측이 빗나갈 때 곧잘 하늘을 원망하고 탄식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쉬 나올법한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늘은 사람을 웃게 또는 울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운명이니 팔자니 하고 잘도 떠벌린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의 통념을 거부하고 또 설사 인정하더라도 거기에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 나의 주의(主義)이고 관()이다. 내가 운명이나 팔자 등을 부정하는 까닭은

 

인간은 창조적 동물이라는 것.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개척자적 정신에 의해서만 발전이 있다는 것. 사람의 가는 길이 예정되어 있다면 너무나 생이 무가치하고 정신의 쇠락을 가져온다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성취하고 추구하는 데서 고귀해 지고 원숙해 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반대로 상정해 본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서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항상 인간의 굴레에 씌어져 영원히 거기에만 순응하여야 하며 체념이라는 미덕 아래 자기한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것 말이다.

 

나는 선한 뜻을 갖고 순리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 나는 인간적인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되도 하늘의 뜻, 안 되도 하늘의 뜻이라는 천명사상을 존중하지만 신의 결정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더 좋아하는 쪽이다.

 

내가 부덕해서 하늘이 나를 버리면 내 책임이지만 그렇지 않았는데도 하늘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그대로 그 조건들에 감사하며 그대로 거기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달리 무슨 방도를 취할 것인가.

 

나는 당위성이 있고 가능성이 있으며 정당한 것이라면 옛 성인들의 행적을 빌어 하늘의 뜻을 거슬러가면서 덤벼들 것이다. 한 마디로 하늘과 씨름하겠다는 것이다. 하여간 나는 내 앞의 잔이 옮겨지는 것을 막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세상 살 동안 짓고 싶은 유일한 죄이다. 이것도 죄인가? 죄가 된다면 나 무릎 꿇고 소리 내어 울어 볼 것이다.

 

1977820

남도 땅 벌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