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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려워

무릉사람 2024. 10. 14. 21:29

여유당(與猶堂)은 정약용의 아호이자 사랑채 당호이기도 하다. 남양주시 조안면 선생의 유적지에 가면 안내문에 여유당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노자의 도덕경 15장에 나오는 말로 겨울에는 시내를 건너듯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는 뜻이라고.

 

나는 선생이 이것을 호로 쓴 것은 총애해 주던 왕 정조가 승하하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자기연민과 세상 명리에 밝지 못한 자신을 조심스레 가리키는 것이라 보고 있다. 아마 선생은 장자의 삶이란 측적(側足), 발을 조심조심 내딛는 것과 같다.’는 말에 적이 공명했을 것이다.

 

확실히 인생은 어렵고 어렵다.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고, 때를 알아보기 어려우며, 결정하는 것도 어렵다. 더욱이 인생난득 불법난봉(人生難得 佛法難逢)이란 불가의 말처럼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나 불법 등의 진리를 만나는 것은 더 어렵다 할 것이다.

 

인생이 쾌도난마(快刀亂麻)나 파죽지세(破竹之勢)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생은 대부분 첩첩산중(疊疊山中)이거나 아니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 할 것이다.

 

왜 오래 살수록 험한 꼴을 많이 보아야 하는가?

왜 십년공부는 도로이기 일쑤고, 천려일실(千慮一失)이 있어 천추에 한을 남기는가?

일만(一萬) 가지 계책을 세우고 대비하나 얄궂거나 공교롭게도 일은 왜 자주 어긋나는가?

 

나이 먹을수록 젊었을 적의 부드러움을 잃고 완고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아름답게 퇴장을 못하고, 흔연히 내려놓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사람은 하루에도 12번 변하고, 평생 또 12번 변한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에 12번 변하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고, 평생 12번 변하는 사람의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혹시 하늘대신 손가락을 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혹시 선지자를 핍박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은 자고 나니 유명 인사가 되고, 자고 나니 왕이 바뀌기도 하며, 자고 나니 까만 머리가 하얗게 변하기도 한다.

세상은 같은 괄호 안에 있으면 관대하지만 다른 괄호 안에 있으면 적의를 품는다.

천도(天道)는 무심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릴 적에는 옥이나 돌이나 함께 불탄다.

선의(善意)는 자주 왜곡되고, 호의(好意)는 종종 무시된다.

진심(眞心)은 때때로 폄훼되고, 밤길에는 짐승보다는 사람 만나는 것이 더 무섭다.

눈은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하기는 커녕 자주 핵심을 놓친다.

더군다나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아주 오랜 옛말이 있다.

 

법전스님의 자서전 누구 없는가에 보면 한 동자승이 3일 동안 산속을 헤매다가 겨우 절집에 들어온 사연이 있다. 이때 스님은 이런 말을 한다. ‘이 아이는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이다. 도의 길은 그 사흘 밤낮 춥고 배고프고 무서웠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고행의 길이라는 것을. 하늘을 움직일 만큼의 정신하며 목숨을 내놓고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과연 스님의 말처럼 하면 도를 만나고 인생을 알 수 있을까?

 

-인생은 우주를 마음으로 삼고, 자연을 집으로 알며, 세계를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여간 낯설고 어설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2024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