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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철인(哲人)이 없다

무릉사람 2019. 2. 20. 21:08

요즈음 산전수전 다 겪으며 공중전까지 치렀다고 자부하고, 세인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는 사람들에게서 실망할 때가 종종 있다. 정치나 종교, 기타 분야에서 최고를 이룬 사람들의 위상이 깎이고 그동안의 것들이 허상임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는 기대가 어긋나고 우러러 봄이  깨지기 때문이며, 본디 언론이나 입들을 통해서 날조되고 도색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젊었을 적에 꿈을 이루고 포부를 펼치기 위해서는 장려되고 대단한 것들이며,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무명인이라면 당연하고 이해될 수 있다. 나 같이 나이 먹어 눈물을 흘리며 옛사람들의 분발을 본받자고 하는 것은 가련하게 보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서는 역겨움이 느껴지며 거부반응이 생기고 반발심리가 일어난다.


그 정도 살고, 그 정도 성취하고, 그 정도 가졌으면 가파른 산은 평야가 되고 급류는 넓은 강물이 되듯 그렇게도 되었건만 이 사람들은 아직도 특정지역, 특정이념 특정모양에 자신을 제한하고 구속시킨다. 정형화, 규격화, 특정화는 사람을 모으고 증대시키는 데는 효과적이나 사람을 아우르고 사물의 적정을 도모하는 데에는 부족한 것이다.


표준은 기술에서는 부의 원천이나 생각이나 의식에서는 아류나 부류를 낳을 뿐이고 우리의 입지를 좁힐 뿐이다. 이 사람들은 사명감을 말하나 내가 알기에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과 죽어야만 멈추는 공명의식이 어느 누구보다도 끈질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에게서- 그들이 전 현직 대통령이나 종교의 최고자라 하더라도- 지위와 생각의 비대칭을 발견하고 나이와 생각의 언밸런스를 보게되며 그들의 영광은 사상누각이고 그들의 명성은 잘못 전해진 것이며 역시 그들을 통해 다석(多夕)선생이 말한 것처럼 「이 땅이 물질적 빈곤은 면했으나 정신적 빈곤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안타깝게 보고 또 본다.


불교에서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한 때는 글을 읽을 때 언더라인을 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은 적시되고 표시된 것들이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고 한정시킴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어느 한 상(相)이라도 취하면 베이고 찢길 때 응당 화내고 원망하고 원통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나 장자(莊子)의 「상아(喪我)」라는 말은 나라로부터 은혜를 입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매스컴은 이들이 대단하여 국민적 영웅이며 국민의 우상이라고 소리치나 진정으로 대단하여 백성들의 영웅인 사람은 허난설헌(許蘭雪軒). 이태백(李太白). 소동파(蘇東波)일 것이다. 대중을 선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색신(色身)으로 살았으면 족할 것이고, 우리들을  탐욕과 구태로 정형화하고 규격화하여 끝내는 형해화하고 화석화하는 행위는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구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오로지 인생을 관조하며 세상을 통찰하여 「방하착(放下着)」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TV가 생겨 난지도 어언 몇 십 년, 그동안 화면에서 많은 사람을 보아왔는데 내가 놓치고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나의 곤혹스러움과 낭패감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0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