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저께(1월18일)는 모처럼 서울 근교의 산을 벗어나 대관령 북쪽 6km쯤에 위치한 선자령(仙子嶺)을 찾아가게 되었다. 산자락이 너무나 아름다워 선녀 모자가 함께 노닐었다는 이곳은 아득한 옛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 어린 시절, 봄이면 우리 가족이 누에를 치던(養蠶) 진고개와 이웃하고 있는 예사스럽지 않은 산이었다. 대관령 구도로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에는 함박눈이 내렸는데 산 중간에 이르면서부터는 심한 눈보라로 변해 백두대간 어느 한 곳도 허투루 할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하루이기도 하였다. 꼭대기를 돌아 내려올 적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푸른빛을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흰색과 푸른색으로만 이루어진 세상, 거기에서도 내 그리움은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젊은 날 그리움으로 충만한 때가 있었고. 장년의 시기에도 그리움의 엄습을 가끔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립다 말을 할까 아니 그리워」가 전자라면 「지금은 뉘 집 가문 시집가서 사느냐?」는 후자일 것이다. 「그 집 앞」은 언제나 그리움의 절정이고 「남몰래 흘린 눈물」은 지금도 계속될 수 있는 앙금이랄 수도 있다. 「소나기」가 절제된 그리움이라면 「개츠비」는 목숨과 바꾼 그리움이었다. 이렇게 그리움은 아련하고 아스라한 것이라 소유하거나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몇 편의 추억이 반드시 있어야 하듯 그리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움은 인류의 열병이지만 그것은 전염성이 강하며 또한 한 번 걸리면 고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다른 것은 대체할 수 있고 보완할 수 있지만 만약 그리움이 없다면 그것은 치명적 결함인 것이다.
그리움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신사임당이 강릉 친정을 떠나 대관령에서 지었다는 시에서는 늙으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골육의 정이 절절히 배어있고. 정철의 사미인곡이나 이항복의 「철령 높은 봉우리에 쉬어가는 저 구름아」로 시작되는 시조에서는 임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알알이 스며있다. 탄금을 할 때마다 소감을 피력하던 종자기가 죽고 난 후 백아의 그에 대한 그리움을 알 수가 있을 것 같고. 유비가 죽고 난 후의 제갈공명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며. 진원원, 자기를 위해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에 투항한 오삼계의 그리움도 경국(傾國)의 그리움일 것이다. 이는 미물에게까지 이르니 소금수레를 끄는 말에 자기의 웃옷을 벗어 덮어준 백락에 대한 천리마의 그리움은 보통사람은 아예 따르지 못할 것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보는 날에는 조선의 세종과 금나라의 세종이 그립고. 도량 좁은 정치 지도자를 볼 적에는 조선의 태종과 당나라의 태종이 더욱 그리워진다. 현실이 암울하고 질곡이 심할수록 이 그리움은 세우(細雨)준 알았는데 어느 듯 폭우로 바뀌었고. 미풍을 쐬었는데 어느새 광풍을 맞는 것이었다.
그리움의 대상이 된 사람도 복 있는 사람이고 그리워하는 대상이 있는 사람도 복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09년 1월 20일 오늘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 것인가? 정치란 활인술(活人術)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009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