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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권사람과 비제도권사람
    카테고리 없음 2019. 2. 20. 21:27

    왕후장상(王侯將相)을 지낸 사람들은 다 제도권사람이다. 그가 왕후장상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피를 빨았으며. 눈물을 흘리게 했을까? 그런데 살아서는 한 종파의 교주 또는 한 지파의 우두머리를 하고서 죽어서까지 그 기능을 다 하고자 한다. 고조선시대에도 삼국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똑같았다.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 이규보가 살았던 시대, 허균이 살았던 시대에도 똑같았다. 일장공성만골고(將功成萬骨枯,한 장군이 공이 있기까지에는 수많은 병사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는 언제나 있었고. 그것은 곧 멈춰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그것은 유럽의 제패나 중원통일이든 흥망성쇠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고. 사람의 시선이 머물면 그것은 플라톤의 학설이든 공자의 가르침이든 뼈다귀만 남게 된다. 제도권에 들어온 이상 그 지위가 높든 낮든 이루어 놓은 일이 크고 작건 인격이 고매하건 그렇지 않든 결국은 오리 되고 닭이 되어 모이를 다투고 경계를 다투고 전리품을 다투게 된다. 제도권 자체가 굽어있어 마치 「굽은 지팡이의 그림자도 굽어지듯」 다들 「오십 보 백 보」인 것이다.

     

    한 때는 제도권사람이었으나 굴원(屈原)은 아독청(我獨靑) 아독성(我獨醒)을 지향으로써, 항우는 오강가烏江에서 권토중래捲土重來하라는 정장의 말을 거절하고 자결함으로써, 소동파는 「무한한 장강을 부러워하고. 유한한 인생을 한탄한다.」를 반어(反語)로 사용함으로써 비제도권 사람으로 옮겨졌다. 어찌 호의호의한 신죽주와 세종의 고명을 받든 성삼문을 같은 반열에 놓을수 있을까? 어찌 권신 한명회와 아호처럼 고독하고 애잔하게 살다간 매월당을 동격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사람이 무릇 부귀공명을 누렸거나 누린다는 것은 이미 색신(色身)의 옷을 입어 법신(法身)으로 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느 기준이 되고 표준이 되며. 준거(準據)또는 준칙(準則)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속진(俗塵)의 장수와 강산의 주인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모든 제자 입신공명을 말했으나 오직 한 사람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며 음영하고 돌아오겠다.」는 증점만은 계속 입에 올려 그리움을 확인하는 것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


    2009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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