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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天壽)를 못 누리는 나라카테고리 없음 2019. 3. 2. 22:09
자고이래로 사람들의 최고 소망은 부귀장수, 그중에서도 장수(長壽)였다. 최대한 오래 사는 것이 꿈이었고. 고목이 괴사하듯 노쇠하여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천수라고 생각했다. 거기에다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죽는다면「고종명(考終命)」이라 하여 더 없는 복으로 여겼다.
그런데 누구나 언젠가는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지만 그 불귀가 당연하고 자연스럽지 못하고 한이 되고 응어리로 남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생명이 항시 바람 앞의 촛불 같고,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복불복이며, 나의 생명이나 평안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누 떼 중에 한 마리가 포식자에게 희생되어 얻는 잠시적인 생명이나 평안과 같다면 이것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닌 것이다.
나나 가족들이나 이웃들이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고. 어느 당나라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의 주검이「가련하구나. 무정하 강변에 뒹구는 백골들아.可憐無定河邊骨」처럼 된다면 이것은 끔직한 것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하도 대소 관리를 많이 죽여서 관리들이 저녁때 집에 들어와 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오늘도 무사히 지냈다고 생각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이와 흡사하다면 이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대문 밖이 저승」이라지만 저승으로 가는 길은 좁고 문은 작아야지 저승으로 가는 길이 넓고 문이 크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회나 정상적인 나라가 아닌 것이다. 비명횡사나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각자 자기의 맡은 일만 잘 했다면 살아있을 생명들이 그렇지 못해 죽는 것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합의인 것이다.
사람들이 천수를 못 누리는 것은 이 나라에 만연한 생명경시풍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본다면 그 중심에는 나라가 있다. 인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을 아끼는 나라에서는 비명횡사가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생명의 보전과 유지도 한 나라의 역사나 문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인명존중만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처럼 권력이나 정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도 없다.
그러나 이 나라는 멀리는 조선시대 억지로 정여립모반사건을 만들고 이를 핑계로 고결한 선비 최영경. 정개청 등을 비롯한 동인들을 도륙한 인간 백정 송강 정철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는 박정희 유신독재 때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이 나자 4일 만에 군사작전 하듯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을 전격 사형시킨 인간 도살자들도 있었다.
결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목숨을 파리 목숨 다루듯 하고, 모든 것을 효율과 효용으로 보고 돈으로 환산하는 인간들과 세태가 합세하여 곳곳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의 죽음이 오열 속에 맞는 죽음이 될지 아니면 박수 받으며 맞는 죽음이 될지는 오직 대한민국이「생명공화국」으로 거듭 태어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2016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