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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좀처럼 보여주지 않아 정확히 어떤 얼굴이었는지 몰랐는데 이번에 여지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얼굴은 조선시대 문인 유몽인 시「상부탄(孀婦歎)」의 표현을 빌리자면「일흔 살 할머니가 재가하기 위해 분단장한 얼굴」이었다.
이제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은 화장한 얼굴을 진짜 대한민국의 얼굴로 알았고. 잘 차려입은 옷을 보고 대한민국이 아주 건강한 줄 알았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은 화장한 얼굴에 현혹 당했고. 미혹 당한 것이다. 한 마디로 철저하게 속았던 것이다. 얼굴은 마음의 표상이라는데 이번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민낯에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속내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드러난 민낯은 그렇게 잘 생기지도 그렇다고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살들에서는 고된 역사가 묻어나왔고, 맑지 못한 눈은 지칠 줄 모르는 물욕을 나타냈으며, 몇 개의 크고 작은 상처들은 앞날도 그리 만만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전체적인 얼굴모양은 그동안 물불가리지 않았으며 두서없이 살아왔음을 십분 말해주고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의 선들에서는 어떤 지적인 흔적이나 정신적인 아취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얼굴색은 기름기로 번들거렸으나 그것은 동맥경화의 표시였다. 어느 정도 물질적 성취를 이룬 자의 얼굴색이었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자의 얼굴색이었다. 또 그 얼굴색에서는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연분홍색은 없었으며 다만 푸르뎅뎅하고 시꺼먼 얼굴이었고 몹시도 두껍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른쪽에서 본 측면의 얼굴은 정의로운 기개나 열대 아마존 밀림의 키 큰 나무들이 아래의 작은 식물들에게 햇빛을 양보하는 배려 같은 것이 없이 보였다. 그 옆얼굴은「불행한 인간보다는 행복한 돼지」를 용인하는 것이었고, 배고픈 시나이사막의 유랑 대신에 노예라도 좋으니 이집트에서 빵이라도 실컷 먹자는 이스라엘인의 얼굴을 닮기도 하였다.
왼쪽에서 본 축면의 얼굴은 불의를 저지르는데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그런 얼굴이 아니었고,「정의」나「인간의 길」앞에서는 눈을 바로 뜨지 못하였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 하였다. 또 왼쪽에서 바라본 그 얼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결연하였으며 마르크스를 비난하면서도 그 마르크스보다 더 물질적인 이중성도 띠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적개심과 살기를 내뿜었고. 꽉 다문 입술은 상식과는 반대로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고, 다양하거나 다원적인 것은 악이며, 단세포적이고 일원적인 것만이 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유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서는 자신은 오류가 없으며 자신만이 진리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썹이 성긴 것은 꼭 형제와 이웃들과 화목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너무 튀어나온 광대뼈는 이 사람이 강퍅하고 완고하며 저돌적이고 만용적임을 드러내었다. 또 얕은 입술은 그의 심지가 깊지 못할 뿐 아니라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소유자가 아님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의 말들은 다듬어지지 않아 그가 반가(班家)의 사람이거나 왕후의 궁정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가 내 뱉는 언어들은 도저히 개념을 가졌거나 사유(思惟)하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아! 나는 오늘 마가복음의「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춰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음도 알았고.「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못된다.」는 말이 우리 대한민국을 두고 한 말임도 알게 되었다.
2014 0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