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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별연습」이 필요한가?카테고리 없음 2019. 3. 5. 22:20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쓰지만 우리는 누구나 짧고 긴 차이이지 기한이 있는 생명들이다. 기한이 차면 변제를 해야 하듯 기한이 되면 생명을 주인한테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용운이「님의 침묵」에서 말했듯 우리는 만날 때에도 떠날 것을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별은 그것이 생이별이든 죽음이 갈라놓는 이별이든 괴롭고도 슬픈 것이다. 이별은 쉽고 만나기는 어려워서 옛날부터 사람들은「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천년만년 살고지고.」했지만, 우리는 모두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바삐 만나고 바삐 헤어져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굴원은「슬프고도 슬픈 것은 살아 이별하는 것. 悲莫悲兮生別離」이라고 하여 개인적 슬픔의 극대를 겪었으며, 만가(輓歌)인「해로가(薤露歌)」의「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건만」이나「호리곡(蒿里曲)」의「혼백을 거둘 땐 잘남과 못남이 없구나.」를 들어보면 사별(死別)이 가장 보편적인 비애(悲哀)임을 알게 된다.
이별은 그것이 육친간의 이별이든, 붕우와의 이별이든, 부부간의 이별이든, 연인간의 이별이든 슬프고도 괴로운 것이다. 오죽이나 슬프면 고려 문인 정지상은「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를까 〳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물결위에 더해지네.」리고 했으며. 이상화는「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〳 우리 몰래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고 절규한다.
문학작품에서 이별을 다룬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예술의 영원한 소재이며, 이별을 다룬 작품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여 우리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의 심정에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별이 도적같이 또 천근의 무게로 오는데도 이별에 너무나 소홀 하고 등한하다. 이제부터라도 이별을 준비해야 하고. 연습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별도 인생의 한 부분이고. 이별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며, 더 높은 이별의 경지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별을 생각한다는 것은 당신을 힘껏 한 번 더 안겠다는 것이고, 악수에 한껏 힘을 주며, 그대 눈동자에 내 눈동자를 심거나 겹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귀비를 마외파에서 쓸쓸히 죽게 하는 것이나 조비연이 장신궁에서 외롭게 일생을 마치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닌 것이다.
- 우리가 이별 연습을 하는 뜻은 떠나는 당신의 뒤태가 쓸쓸하지 않고. 남아있는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한 것이다.
2014.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