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대한민국의「좌절」카테고리 없음 2019. 3. 10. 12:21
사람에게 영광과 치욕, 환희와 좌절이 있는 것처럼 나라에도 영광과 치욕. 환희와 좌절이 있다. 나라의 영광이 사르트르나 네루다 같은 지성(知性)을 보유한 것이라면 나라의 좌절은 오늘처럼 무고한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할 때이다. 오늘 세월호의 참사는 대한민국의 치욕이고, 대한민국의 패배이며, 대한민국의 좌절인 것이다.
무릇 나라는 나라의 구성원인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을 1차적 사명으로 하며, 그것이 나라의 존립근거이자 존재이유이다. 이번에 애꿎게 생사를 달리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렸을 적에는 금지옥엽이었고, 청년의 때에는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과 같았던 사람들이었으며, 한 때는 규방여인의 꿈속 사람이었다.
생각하면 이번 참사는 어느 누구의 잘못과 책임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잘못이고 책임일 것이다. 나라는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에서만은 무한책임을 져야한다. 희생자나 지탄받는 사람이나 모두 대한민국의 젖을 먹고 자랐으며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삼대 밭이었다면. 대한민국이 족제비 꼬리털이었다면.
그동안 대한민국은 국민들을 국사(國士)로 대우한 적 있는가?
그동안 대한민국은 국민들을 귀빈으로 대접한 적 있는가?
옛날 주무왕은 어둠속에서도 얼굴을 닦았다고 들었는데, 대한민국은 허세와 허식으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던가?
이번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의 자화상임을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윤동주는 그의 시「자화상」에서 외딴 우물 속의 사나이를 들여다보고 처음에는 그 사나이가 미웠으나 나중에는 그 사나이를 가엾게 여기고 그리워하고 있다. 앞으로 미워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엾어 하고 그리워하는 대한민국을 상상해본다.
-삼가 머리 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2014 0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