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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유민(遺民)되어
    카테고리 없음 2019. 3. 21. 23:47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제의 유민이니 고구려의 유민이니 하는 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유민이란 망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뜻으로 어쩔 수 없이 그 땅에 사는 사람이다.

     

    무지렁이들에게 국가와 왕조는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타당하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고국(故國)이란 말에는 그 뉘앙스만으로도 말 못할 뭉클함이 있고 사무침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미망인(未亡人)아라는 말이 있어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남겨진 여인을 지칭하나 그 말의 타당성은 차지하고서라도 유민이야말로 나라와 운명을 같이 못했기 때문에 미망인이란 말은 유민에게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미망인, 아니 유민이나 유신(遺臣)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려의 유신 길재나 원천석, 정선8현이 그 사람들이고.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서자 뼛속까지 명나라 사람임을 내세운 왕부지, 고염무. 황종희가 그 사람들이다.

     

    망국의 백성이나 망국의 신하는 생활이 비참할 수밖에 없고. 괄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길재와 원천석의 시조와 정선의 아라리를 듣거나 왕부지 고염무 황종희의 저술들을 대하면 흥망의 유수함을 탄식하면서도 그 기저에는 그리운 삶을 구태여 감추지 않았다.

     

    조상들이 충성을 다 하였고 오랫동안 갈 것이라고 믿었던 나라가 망할 때의 상실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찬밥을 먹고 한데서 잔((風餐露宿)것이 독립군이라면 두만강을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며(男負女戴)건넜었다.

     

    그러나 조선이 일본에게 망하고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며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게 망한 것보다도 더한 상실감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도(道)의 붕괴이다. 우리는 도를 도덕이나 가치. 규범으로 부르기도 하고. 원천이나 근거라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은 나라의 멸망보다 우리의 머리를 혼란케 하거나 당황케 하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며, 우리가 그동안 몸과 품성을 다하여 이룩한 것들을 빼앗아간다. 과히 낙백(落魄)이나 낙담(落膽)의 지경이다.

     

    나라에 거짓이 횡행하고. 정의가 저자거리에 나뒹굴며,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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