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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라고, 다「나라」가 아니다
    카테고리 없음 2019. 3. 24. 20:17

    꼭 나라가 망해야만 망국의 백성이고. 망국의 신하가 아니다. 한 나라의 이상이 사라지거나 토대가 무너져도 그러한 것이다 고려와 조선이 뒤바뀔 때 길재와 원천석은 망국의 유신(遺臣)으로 자처했다. 중국 명나라 청나라 교체기에도 고염무 황종희 왕부지는 망국의 유신을 자처했고 오위업은 잠시 출사(出仕)한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나라가 진취적인 기상과 활력을 잃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고. 나라가 국민을 볼모로 강경하고 대결적이며 호전적이고 교조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左之右之)되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고. 김수영이나 사르트로 같은 지성이 없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다. 나라가 개념 없고 영혼이 없는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고.

     

    천박한 사람들에 의해서 전횡되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고,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이 사라졌어도 나라는 망한 것이다. 나라가 하나의 깃발이나 하나의 우상에 빠지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고. 나라에 온유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없는 것도 나라가 망한 것이고, 빵 부스러기나 떡고물에 충견(忠犬)이나 주구(走狗)들이 날뛰는 나라도 망한 나라라 할 수 있다.

     

    한 마리 개가 짖으니까 동네의 모든 개가 따라 짖는 나라도 망한 나라라 볼 수 있고. 봄이 왔는데도 꽃을 꺾어버리면 봄까지 꺾을 수가 있고 제비가 왔는데도 제비만 내쫓으면 봄도 내쫓을 수 있다고 믿는 위정자가 있는 나라도 이미 망한 나라이고, 지배층이 도덕이나 정의를 말하지 않는 나라는 더더욱 망한 나라이다.

     

    나라가 망할 때, 사람들은「나는 은혜를 저버렸지만 나라는 덕(德)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가 망국의 백성을 자처하는 것은 두보의 시「춘망(春望)」중에서「國破山河在, 나라 망했어도 산천은 있어」라는 구절이 내 심장을 찌르기 때문이고 나의 나라, 나의 고국(故國)은 여기가 아닌 저 산 너머의 이상국가(理想國家)이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듯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도 이미 나라가 아닌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그리스와 예수를 처형한 이스라엘은 나라가 아니고. 백성도 있고 왕도 있으나 소크라테스가 없고 예수가 없는 나라도 나라가 아닌 것이다.

     

    2013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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