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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카테고리 없음 2019. 3. 24. 20:25

    아주 오래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슬픈 노래」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날라 다녔다. 그것을 사람들은「연조비가(燕趙悲歌)」라고 하였다. 연조비가는 중국의 전국시대 오늘날의 하북성에 기반을 둔 연나라 조나라는 많은 협객(俠客) 또는 열사(烈士)를 배출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부르는 비장(悲壯)한 노래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쓰는 사람도 남자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남자였다. 남자들은 왜 가장 슬픈 시를 쓰고, 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를까? 그것은「칠보(七步)의 시(詩)」의 시인 조식의 표현을 빌린다면「나무가 너무 높아 바람을 많이 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 3류 드라마를 보고 눈물짓는「아녀자의 인(仁)」이 아니라 즐거이 떼밀리는「장부의 인(仁)」이었다. 논개라는 시에서「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고 말한 변영로는 연조비가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힘을 보탠 사람이었다.

     

    연조비가는 지감(知鑑) 과 지우(知遇),즉 사람을 알아봄과 알아줌에 동요하는 것으로 오고, 바르고 의로운 것에 사시나무 떨 듯 몸과 마음이 떠는 것으로 왔다. 사람의 마음으로 빚어졌고, 사람의 정신이 뿜어냈으며, 사람의 혼이 깃든 그림과 조각품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표정보다 더 리얼하거나 박진감을 담아낼 수 없다.

     

    「크게 기뻐한 사람만이 크게 울 수 있다.」고 했는데, 그들은 크게 기뻐하고 크게 울어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충정(衷情)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들의 단심(丹心)은 변하지 않았다.「하늘 밖에 하늘」이 있는 것처럼「사람 밖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열혈남아」라고 불렀다.

     

    그들을 키운 것은 역시나「바람」이었고. 역시나「빗물」이었지만 간혹 5월의「모란」이나 7월의「종달새」를 생각했어야 했다. 역사에서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형가, 섭정, 예양 등으로 전한다. 생각하면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이 꼭 연나라나 조나라 사람만이 아니고, 꼭 거기 사람만이 비가를 부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은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의「알아줌」에 감격하여 진나라로 들어가기 전에 부른 노래이다.

     

    바람은 스산하고 역수는 찬데, (風蕭蕭兮易水寒)

    장사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壯士一去兮不復還)

     

    -형가는 돌아오지 않았다.

     

    2012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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