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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무슨 「의리」인가?
    카테고리 없음 2019. 3. 27. 20:25

    조선시대 소론의 이인좌는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고 믿어 반란을 일으킨다. 노론의 윤구종은 경종이 후궁, 장희빈의 아들이라 하여신하의 의리가 없다며 경종의 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을 지나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역사의 종말에서 볼 수 있는 유교의 의리론(義理論) 버전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는 오늘의 관점은 물론 그때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자신의 행위들이 당파적인데도 충군(忠君)으로 호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개인이나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하면서 전면에는 국가나 민족을 내세우는데 당신들이라고 예외로 봐주기 어렵기 때문이며, 당신들도 이성(理性)을 도구화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이기면 충신이고, 지면 역적인 권력다툼에서,얼굴이 두껍고. 심보가 시꺼먼정치판에서 가치를 찾겠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이다. 병법의 대가 손자는병불염사(兵不厭詐)라 하여 전쟁에서는 기망(欺罔)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창검 없는 전쟁판인 곳에 까마귀나 어울리지 백로는 가까이 하면 안 된다.

     

    셋째, 겨우 군주 한 사람에게 충성하는 그 협소한 세계관이 문제인 것이다. 당신들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 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성삼문의 흉내를 내나 5왕조 11군주를 섬긴 풍도와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는 군주에게 충성한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충성했다. 사마광은 그를 지조 없는 사람이라고 혹평했으나 그때나 지금에나 이런 인물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넷째, 사람은 다만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공화국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전체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두보와 이규보처럼 병란(兵亂)의 시대를 살 수 있고, 감자의 복녀처럼 평양의 빈민굴이나 이반 데니소비치처럼 수용소에서도 살 수 있다. 연명(延命)하다보면 변화가 오고 반전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다섯째. 당신들은 세상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명 외에는 모두 바꿀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원칙이란 우리의 일탈을 막고 우리를 현상에 고착하게 하지만 신비하고 황홀하며 영적인 곳으로는 인도하지 않는다. 원칙은 세월이 가면 형식화하고 형해화(形骸化)되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에서는 불통이 그 귀결이다.

     

    여섯째, 어떤 권력도 현상이고 찰나이다. 본질이 못되고 영원하지 못한 것은 땅위에 있거나 물속에 있는 것을 가리지 않고 슬프고 왜소한 것이다. 누구라도 니체가 말한디오니소스의 심연(深淵)을 건널 수 없으며, 인간적인 것은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 즉, 니힐(nihil)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면 그동안의 칭송이나 찬사는 동정이나 연민으로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 다섯째의 연장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가짜이자 거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덧없다고 하는 것이다. 권력이야말로 덧없는 것 중의 덧없는 것이다.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치열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당신들이 거기에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비록 이렇게 말하지만 어쩌면 당신들이 시대의 양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경색. 시대폐색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에서 당신들의 이야기는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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