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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성패(成敗)카테고리 없음 2019. 3. 28. 21:13
더 이상 개선할 수 없고,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는 상태가 유기체의 정점이라면 아직 박근혜 전위원장(이하 박근혜)이나 새누리당은 개선할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속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으니,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이 가리키듯 대권을 노리는 사람은 어느 한쪽에 치중하거나 어느 하나에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의「원칙주의」는 스스롤 한계 짓고. 규정짓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그녀가 한 때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기능은 하겠지만 대통령 당선에 이르는 데에 논란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원칙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면 수구나 불통, 완강(頑强)의 이미지만 남긴다. 생각하면 세상에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외경뿐 그 밖의 것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시대정신도 정치적·종교적·문화적 톨레랑스(관용)을 지향하고 있으며, 유력한 대선후보와 유력한 당이「생각」의 탄력성을 높인다면 그것은 본인과 당의 시야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다행일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논어《양화(陽貨)》편에서 원칙과 대비되는 인(仁), 지(知), 신(信), 직(直), 용(勇), 강(剛)에 대해서 아주 적절한 분석을 하였는데 오늘날에도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공자는 사람의 뛰어난 의식작용도 변통이 없으면 어짊은 푼수, 지적인 것은 편견(偏見), 신의는 맹신(盲信). 정직은 가혹, 용기는 만용(蠻勇), 강직은 우매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리가 산 이쪽과 저쪽이 다른 이유이고, 우리나라에서 데쟈뷰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러한 경색(梗塞)과 폐색(閉塞)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관용」의 정신인 것이다.
「박근혜」나 새누리당의 구성원들이 인자하며. 지적이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용기가 있으며 강직하다고 해도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유연한 마음을 기르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소금이 곁들여지지 않은 화려한 만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계속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다면「박근혜」호는 이미 정점을 자났다고 볼 수도 있고, 혹은 역사의 격랑에 난파(難破)중일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 7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