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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정만리(詩情萬里)
    카테고리 없음 2019. 3. 29. 21:41

    어제 낮에는 눈길이지만 북한산 대동문까지 다녀오고, 오랜만에 먼지 앉은 세계명시집을 밤늦도록 탐독했다. 40년 전 내 청년시절. 나는 그 또래들이 으레 그러하듯 한국명시 세계명시 수백수를 완벽하게 외울 정도로 시에 심취했었다. 사실 지금 얄팍한 나의 시지식도 그때 얻은 것을 계속 우려먹는 것이다. 다만 당시(唐詩)만은 지금도 틈틈이 들여다보지만-

     

    오랜만에 바이런이나 쉘리, 베를레에느를 대하니 코끝이 찡했다. 한동안 얼마나 우리가 적조(積阻)했는가. 세월은 또 나를 목매이게 한다. ! 우리는 홀연히 어느 날 인생길 마지막 고갯길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불현 듯 어느 날 살아온 날들이 눈 속의 발자국처럼 사라짐도 깨닫는다. 그것은 꿈속에서 보았던 길을 생시에 걷는 기분이고. 좀처럼 찾지 않던 고향집에 온 기분이었다.

     

    거기에서 오늘 내 그리움의 원형이 싹텄고, 오늘 내 애달픔의 근원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오늘 내 정신의 근거지였고, 오늘 내 영감의 원천이었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은 영혼까지 포함시키지 않음을 시인은 증명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시가 없다면 이졸데와 도리스탄, 탁문군과 사마상여의 사랑이야기나 자객 섭정, 예양. 형가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콕토의 시우작偶作중의 한 구절인대리석보다는 살아있는 나무()가 낫지. 새기는 자네 이름도 함께 커갈 테니까.나 헷세의 시사랑의 노래그대의 넋을 건드리지 않으면, 어찌 내 넋을 간직할 수 있겠어요?라는 구절은 범상치 않은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말들로서 어제 밤의 인연이 범상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처럼 내 맘속에 시정이 남아있음을 알아챈 시간이었다.

     

    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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