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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잘 만나서카테고리 없음 2019. 3. 29. 21:42
선생은 지금 또는 과거, 선생의 인생이 백척간두(百尺竿頭)나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습니까? 그러나 슬허하지 마십시오. 큰 마이너스여만 큰 플러스가 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려움과 힘듦, 생사의 고비는 사람이 보다 높은 경지((合)에 도달하기 위한 진통(反)이라는 것이 여러 현인들의 설명입니다. 사람은 백척간두가 되고 풍전등화가 되어야만 비로소 참말을 하게 되고 이해타산을 넘어서니 그것은 축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선거철이다 보니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 많은 사람들이 공천신청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기를 기대하나 지난날 국회를 돌아보게 되면 그들도 역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삼이사(張三李四) 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요즘 조선, 중앙, 동아에서 화려했던 사람들이 수난을 당하는데 선우휘나 최석채의 신들메도 풀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이상을 욕심내니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잘박함과 절실함 외에는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생에서 절실함과 절박함이란 서당 개가 삼년 풍월을 읊는 것은 아예 비교가 되지 않고, 밤새도록 곡을 했는데 누가 울었는지도 모르는 것을 제치는 것이며, 가려워서 긁었는데 남의 다리를 긁는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논리실증주의 같아 우리를 일탈로부터 막아주지만 비상(飛翔)이나 전환(轉換)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변혁은 주변부에서 오고 창조는 밑바닥에서 오는데, 그 주변부와 밑바닥이 바로 신산(辛酸)의 세월이요 인고(忍苦)의 세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모른다.」하고,「부자 3대 못 간다.」하며,「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말할까요?, 그것은 인생에서 맛보는 신맛 쓴맛이 사람을 깨우치게 하고 눈 뜨게 하며, 참고 견디게 할뿐만 아니라 부패와 부식을 막아줌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삼국지를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란 말은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음을 상정(想定)하는 것입니다.
이른바「젓 비린내 나는 애송이」나「백면서생」의 위험성은 역사에서는 흔합니다, 중국 전국시대 때 조나라의 명장 조사가 죽고 그 아들 조괄이 대장이 되자 모친은「이제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했구나!」라고 말합니다. 결국 조나라의 40만 대군은 조괄의 잘못으로 집단 생매장을 당합니다. 또 위나라 조상은 대장군 조진의 아들로서 병권의 적첩을 가졌지만 노회한 사마중달에게 결려들어 조조로부터 시작한 위나라를 망하게 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자란 곳이 광야냐 온상이냐의 차이가 집안을 망치고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중국 청나라말의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뒤 지식인들이 흠모했던 공자진은 어린 시절 북경시장에서 부는 도봇장수의 풀피리소리에 몇 번씩이나 자지러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도봇장수의 애처로운 삶이 그 곡조들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며 공자진의 감수성이 그것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선시대는 박지원같은 실학자도 있었고 이율곡이나 이퇴계같은 대학자도 있지만 정약용이 그들보다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그가 18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고독과 실의가 정신이 되고 마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밀턴이 눈멀어 실낙원을 구술하고, 사마천이 궁형에서 분발하며, 인류의 자랑인 채문희, 이청조, 허난설헌, 두보, 바이런 그리고 조선시대 동대문 밖에서 복사꽃 떨어지는 날 죽은 권필, 정조 임금에게 밉보여 평생을 질곡에서 산 이옥에게도 해당될 것입니다. 이규보의「북촌에는 곡소리, 남촌에는 풍악소리」의 의미를 모르고, 박용철 시인의「떠나가는 배」에서 남부여대(男負女戴) 란 말에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 정치를 하고 종교를 말하며 철학을 논하고 세상사를 안다고 하는 것은 쇼요, 비례요, 언어도단입니다.
2012년 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