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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카테고리 없음 2019. 3. 31. 13:15
지구상에는 많은 민족이나 나라가 흥기했으나 지금까지 쇠망하지 않고 명맥을 잇는 민족이나 나라는 아주 드물다. 한 때 강성했던 티무르제국, 황제를 일컫던 요나라나 금나라도 이제는 설화說話로만 전하여 옛일을 생각하는 사람을 수심에 잠기게 할뿐이다. 헤겔의「존재하는 것은 합리적이다.」라는 금속성 명제가 「존재하는 것은 경이적인 것이다.」라는 인문적 명제로 바뀔 때 확실히 존속한다는 것은 위업偉業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당연히 연구와 관찰의 대상인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다. 「가변적이고 유연한」조상님들의 외교술(?)덕분일 수도 있고, 은근과 끈기라는 민족 원형질의 저력의 작용일 수도 있으며 역사의 고비마다 「역사를 관장하는 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구색이 모자란다고 할 있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 선비나 문인, 또는 지식인이나 인텔리겐챠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비로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들은 비록 병장기를 들지 않았고, 쟁기질을 하지 않았지만 「언어」를 특기로 국혼을 지키고 사람들의 정서에 파고들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넓혀주었다. 누구는 권력자의 사냥개 노릇에다 장식품 노릇도 하였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 「춘추대의」를 밝히려 하였다. 김종직은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조의제문弔義帝文를 짓자 부관참시를 당하고, 명종과 문정왕후를 힐책하는 단성현감 조식은 훌훌 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명학파의 서릿발 같은 행동주의는 홍의장군 곽재우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권력자가 깔아뭉개면 뭉개졌고, 갖가지 「사화士禍」나「문자옥文字獄」에서 보듯 혀(舌)와 글(文)은 검이 되어 자기 몸뚱이를 베곤 했다. 그들의 목숨은 궁류시宮柳詩 한 줄 잘못 써 의금부에서 죽도록 얻어맞고 유배길 첫 도정 동대문 밖에서 친구가 주는 위로주를 마시고 갑자가 죽은 광해군 때의 권필이나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 때문에 숙종의 진노를 사 역시 죽도록 맞고 유배 가는 길에 노량진에서 장독杖毒으로 죽은 박태보처럼 가련한 존재였던 것이다.
조조를 정면에서 비난할 만큼 너무나 급진적인 예형이나 조선 14대 선조의 정쟁의 이용물이 되었던 정철 같은 사람은 「옥의 티」였지만 그들조차도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비무장의 사람이었다. 권력자의 눈에 나면 자기를 보호할 수단이 없었으며, 오로지 권력자의 시혜를 바랄 뿐이었다. 그들은 추상성만을 띄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문학은 빈곤하고 역사는 허다한 공동으로 채워지며 지성은 심하게 기근현상을 겼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의식의 토대였으며 자양분이었다. 그들은 우리 문화의 창시자인 동시 보존자였고 또 계승자였다.
그들은 눈이 밝고 영감이 수시로 떠오르며 상상력의 제한을 두지 않으므로 「이단자」나 「반골」의 레테르도 가지고 있으니 이 이중성은 그들의 성격에서 오는 운명이라고 볼 것이다. 그들은 또 「세상의 마술사」이고 그들은 또 하나의 「김춘수」나 「백락伯樂」이니 그들만이 가치부여자이고 가치창출자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더러는 문명文名을 날린 사람도 있으나 그 경우는 단순히 줄을 잘 섰다거나 핀치히터로 나섰다가 각광을 받았거나 앞서간 많은 문사들의 노력의 산물과 성과에 힘입은 것이라 고 말할 수 있다.
또 그들은 죽은 뒤에야 비로소 현인을 만나 이름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데 도연명이 소명태자의 작품「문선」실려지고 나서야 알려지고, 정조 이산의 「문체반정」 때문에 소품(소설)들은 쓰레기 취급을 받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 나중에 김려에 의해서 유고집이 편찬된 이옥을 보면 고단하고 팍팍한 그들의 삶이라는 것이 서정적抒情的인 것과는 거리가 멀음을 알 수 있고. 항시 소명태자나 김려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슬은 영영 흙속에 묻힐 수 있고 준마는 마구간에서 죽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누구나 잡을 수 있지만 명문名文만큼은 누구나 쓸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그의 글은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이때에 글자들은 천군만마千軍萬馬로 변할 것이고 행간으로는 뇌성벽력이 치고 여백에는 잔잔한 강물이 흐르든지 아니면 산들바람이 분명 불 것이다. 「나르시스트」나 「몽상가」로 그를 정의할 수 있지만 그가 세상의 모든 명성이나 평판에 대해 「세치가 오히려 길고, 석자가 도리어 짧는」묘리를 파악했다면 그는 구법求法의 마지막 고개를 오르고 득도得道의 문 바로 앞까지 왔다고 할 것이다.
2010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