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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카테고리 없음 2019. 3. 31. 22:50

    그때만 최서해가 탈출기를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1964년 봄 지명은 신선이 사는 것 같고 풍광은 좋았지만. 우리 4 식구 남포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 종일 철도 자갈을 깨고 나르던 무릉(武陵)도 똑 같았던 것이다. 뒤에야 그것이 정선 아라리에로의 편입임을 알았다. 김동인의 감자에 나오는 평양성 칠성문 밖 빈민굴은 1970년대 초 서울의 동대문 밖 -지금의 이스턴 호텔 뒤-에도 재현되었다. 창녀, 거지, 막일꾼, 행상인 등 하류인생들이 밤낮으로 악을 쓰고 싸움질 했다. 20여명이 거처하는 다락방에서 나는 내 젊은 날 5년여를 또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옛날 고향 친구를 만나면 , 너 눈물 흘리며 기도 하던 것이 제일 생각난다.고 말하고, 오랫동안 교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대 아직까지 욕설을 하고. 상소리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들 한다. 나는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도 사는 존재임을 오늘날까지 떨쳐버린 적이 없고. 어렸을 적 밤을 새워 읽은 원탁의 기사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에 대한 감동은 지금이 되려 생생하기만 하다.

     

    그것은 정신이었고 의식이었다, 나는 고지식하게도 하늘이 사람에게 큰일 맡기실 때, 반드시 먼저 그 말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살과 뼈를 지치게 하며, 그 몸과 가죽을 굶주리게 한다.( 맹자) 는 말을 철저하게 믿었으며, 공자의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말에 자주 낙루(落淚)하면서 김정식선생(일제 때 재일본 YMCA총무)과 월남 이상재 선생도 그러했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의식과 연대감을 느꼈다.

     

    생각하면 우리나라를 덮고 있는 하늘이 청명하고(온갖 원귀가 없어서), 이 땅이 영험하다면 사람들도 의당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땅은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걸출한 인물들을 시기하였으며, 무지렁이들의 무덤이었다. 고려시대 때도동가(東家)에서는 곡소리. 남가에서는 자지러지는 소리(이규보)였고, 조선시대에도 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며,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민초들의 원망소리 또한 높더라(춘향뎐)의 계속이었다.

     

    역시 내 삶도 진창이었고. 황톳길이었다. 수용소 아닌 수용소였고, 병영 아닌 병영이며, 감옥 아닌 감옥이었다. 더러는 기쁨도 있었지만, 나는해형일(解刑日)을 기다리는 자였다. 그것은 할 수만 있다면 로마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죽인 상대방이 자기의 고향친구임에 비인도적인 로마제국을 전복하는 것의 재현이고, 허락만 된다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일어선 홍경래나 책사 우군칙이나 김사용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뒷날 누군가 내가 오늘 이 이름들을 불러오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오늘까지 나를 키운 것은 대한민국의 산천이었다. 그 알량하고도 얄팍한 인연이 대한민국과 나를 여태까지 이어주며 내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부터 나라로부터 은혜를 입고서도 돌아섰고. 이 나라는 자주 도()가 끊기고  덕을 버린 나라이지만 나는 옛사람의군자는 다른 사람과 절교를 해도 악평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도 누명을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전국책).말이 있음에 안도하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 나라가 사람들을 보통사람으로 대접하면 그 사람도 그러할 것이고. 나라가 사람들을 국사(國士)로 대접하면 그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흥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관심법이다.

     

    2009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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