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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비효율」이지만,카테고리 없음 2019. 4. 3. 20:47
莊子, 崔致遠. 蘇東坡. William Wordsworth. 이 이름들이 있어서 인류는 짐승을 면했고. 이 이름들이 있고나서야 인류의 자유정신은 무르익었다 지성과 이성을 꽉 쥐어 휴머니즘과 로맨티시즘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그야말로 꿈의 이름들이다. 세상에 정치 종교 등의 뭇 우상들은 파괴되어야 하나 이들은 영원히 우상시 되어야 하고. 세상의 온갖 아류나 부류는 제거되어야 하나 이들을 추종한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 된다. 나는 밤낮으로 이들의 의식을 닮으려 하고. 그 기개를 배워 똑같은 족속이 되길 원하나 생각만 앞설 뿐 역량이 모자람을 늘 안타까워한다. 다만 한 가지 현대문은 생경하고 시큰둥하기도 하지만 고문 속에서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감응이 있으니 그 얕은 인연에만 의지할 뿐이다.
오늘날 「산도 산이 아니고, 물도 물 아닌 곳으로,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곳으로」마치 춥고 추은 북만주 영고탑으로 유배를 가던 사람들의 심정처럼 삶이 거칠고 가파르다. 이미 경제는 어느 한 사람의 재주로는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한국에서는 170석이 넘는 의원수가 중량감이 아니라 중압감임이 증명되었으며. 異說 異人 異風은 나를 교정하고 강화시키는 것임에도 이 나라에서는 불온시 당하며. 헤리포터의 이야기가 시사하듯 판타지 등의 상상력은 부의 원천인데도 상상력이나 다양성은 금기시된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 는 없다.」.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심복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란 시끄럽고 느리며 느슨하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많은 계몽사상가들이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것은 인간을 못 믿고 시스템을 믿었기 때문인데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나는 경제 발전 없이는 민주주의도 요원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경제논리를 들이대는 것에는 절대 반대하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돈과 대척점에 서야 하는 것도 있어야 하고. 대칭을 이루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실례로 휴머니스트이자 로맨티스트인 소동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하는 임어당저 진영희역 「쾌활한 천재, 소동파」에서 발췌했다.
한 번은 소통파가 黃州에서 친구들이 마련한 송별연에 참석했다. 그때 한 기녀가 동파에게 다가와 그녀의 목도리에 시 한 수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동파는 황주에 거주하는 동안 시를 청하는 기녀, 이기(李琪)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드디어 다음과 같은 서두로 시를 시작했다.
「동파가 황주에 있은지 4년여 동안 어찌하여 이기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는가? 」
(東坡四年黃州住 何事無言及李琪?) 연회석 사람들은 이 시의 서두가 좀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먹고 마시다가 이기가 다시 동파에게 다가가 그 시를 완성시켜주길 부탁하자 「아차, 잊었군.」하며 다시 붓을 들어 4행시의 나머지 반을 단숨에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다. 「두보(杜甫)가 서천(西川)을 사랑했으면서도 시를 읊지 않은 것처럼 , 해당화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다만 시로써 읊어 표현하지 않았을 따름이다.」(却似西川杜工部 海棠雖好不吟詩).
우리는 이 시에서 고아한 매력에 삐지고 청신한 시풍에 찬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시에는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잃었던 「인간과 낭만」이라는 테마아래 사랑의 크기에서부터 인간과 하늘의 소통이라는 데까지 分化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000전년의 사람은 이미 알았던 것, 지금의 시대조류는 「돌아서 가라.」는 것이다.
2009년 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