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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은 처음에는 제아무리 선선하고 좋았어도 세월이 가면 낡고 시들고 썩어 악취가 풍긴다. 출발은 좋았어도 마지막까지 좋은 경우는 드물고, 처음에는 기대를 가졌으나 실망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변화하고 생명 있는 것들의 어찌할 수 없는 속성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예술도 결국에는 탐미주의를 거쳐 퇴폐적이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들은 유위(有爲)한 것들의 운명인 것이다.
모든 사물에서 적폐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이 없고. 끝까지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이 없는 이상 시간이 가면서 폐단이 쌓이고, 폐단이 쌓이다보니 불협화음과 파열음이 나오고 누수(漏水)가 생기고 간격이 벌어지고 말(언어)이 날아다니는 것이다.
적폐의 끝은 망하거나 도태되거나 나눠지거나 깨트려지거나 없어지는 것이다. 공룡이 망한 것도 적폐 때문이고. 흥망성쇠가 빈번한 것도 이 적폐 때문인 것이다.「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은 적폐를 위에서 보았거나 통시적으로 본 것이다.
나라도 오래되면 생명력이 약화되고 향기도 사라지고 총기(聰氣)도 없어진다. 또 승평(昇平,태평)의 세월이 오래가도 나태하고 타락하게 된다. 적폐란 시스템의 동맥경화이면서 또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동맥경화인 것이다.
사람들은「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거나 터지면 적폐, 즉 누적된 폐단 탓이라고 말하지만 적폐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누적된 경직(硬直)임은 모른다. 사람들은 애써 적폐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
대한민국의 적폐란 우리가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스템과 사람들의 피로현상이요 노쇠현상인 것이다. 처음에는 정화(精華)였으나 나중에는 적폐가 되고 처음에는 총화(總和)였지만 끝에는 지리멸렬한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유기체 자체가 모순덩어리가 되면 유기체에서 자라는 모든 것은 유기체의 아들이요 딸인 것이다. 즉 대한민국이란 유기체가 적폐의 온상이고 배양지가 됐다는 것이고 여기에서 최고· 최대로 수혜를 받는 사람이 대한민국 적폐의 심장이자 몸통인 것이다.
그 사람이 야인(野人)이 아니고 시정인(市井人)이고. 그 사람이 은인(隱人)이 아니고 명리인(名利人)이라면 적폐와의 밀접성은 더 농후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적폐는 정치적으로 대통령이고 경제적으로는 재벌이고 사회적으로는 상류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폐척결을 하겠다는 것은 진정이면 눈물겨운「자기부정」이고.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서도 그랬다면 거짓인 것이다. 무릇 수혜와 적폐는 동전의 양면이고, 원인과 결과이고, 이유와 결론인 것이다.
세상에 적폐를 없애는 방도는 없다. 유토피아가 유토피아로 끝났듯 현실은 적폐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더 이상 적폐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고, 사람이 죽는 것도 더 이상 적폐를 덜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적폐에서 우리가 그나마 희망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눈물겨운 자기부정밖에는 없다. 그런데 세상에 어디 자기부정을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이렇게 우리는 한 적폐가 다른 적폐를 나무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014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