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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카테고리 없음 2019. 4. 6. 15:24
나는 어렸을 적 주위 어른들의 「老醜」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으나 그 뜻을 잘 몰랐었다. 不惑이라 하고 不動心의 나이라 하는 40도 훨씬 넘고 知天命의 나이라는 50의 중반에 들어서니 이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나는 博覽强記한 20대 청년의 때에는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원숙해져 최고의 생각을 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는지 알았으나 지금은 그 생각들이 빗나갔음에 아끼던 보물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다. 사람은 과연 나이를 먹을수록 그에 값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람은 과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 나이를 먹을수록 병들어 털이 듬성듬성 빠진 개나 이른 봄의 殘雪과는 반대로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孔子는 일찍이 「군자는 나날이 인격이 빛나는데 비해 소인은 점점 추악해 진다」고 했는데 이는 필경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한자에서 늙는다는 「老」자는 어른의 의미도 있으며 기운다는 의미도 있고 익숙하다는 의미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물론 연세가 많은 노인은 모든 부문의 어른으로서의 자격이 있으며 또 어느 한 부문에 통달한 분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모범이 아니며 후학이나 후배들보다 용렬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왜 그럴까? 그리고 또 왜 사람들은 「老慾」을 경계하라 했을까?
①본능적으로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아 사력을 다하고 진력을 다하는 것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며 ②기력이 쇠해지면서 대신 말이 많아지고 생각은 경직되어 고집이 세어지고 ③세월의 풍상 속에 남아있는 것은 재물과 혈육이라 私情의 의존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얼굴이 몰골로 변하는 이유이고 마음이 강퍅한 이유이다. 그러나 학문을 좋아하고 자기수양에 힘쓰며 종교적 열정에 뜨거운 사람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고 안온함이 엿보인다. 언제나 세상에서는 소수자만 승리하는 것처럼 대부분은 나이 먹을수록 속물화하여 이것들이 인간의 한계로써 우리를 절망 시키며 뜻 있는 청년들의 기개를 꺾고 있다.
「10대의 천진난만한 동심이나 20대의 순수함과 용기를 죽을 때까지 간직할 수 없을까? 항상 젊었을 적의 깨끗한 마음과 높은 뜻을 노인이 되어서도 지킬 수는 없을까? 」의 생각이나 「지는 해가 일출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기품 있게 살아야 한다.」 는 다짐은 귀한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책을 읽으며 사색을 통해서 또 하나의 결론을 얻었으니 그것은 노인일수록 자기의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한 분은 신당을 사주하고 어느 한 분은 어느 예비후보를 지지하며 한 때 유력했던 사람들은 다투어 예비후보들에게 줄을 서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국정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한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는 옛것에 대한 미련이요 애착이고 욕심이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대치될 수 없는 정치인은 없다」는 것은 확고한 정설이다. 세상은 내가 아니라도 굴러가고, 대한민국은 내가 아니더라도 준재와 인재가 많아서 時體말로 「걱정 뚝」 해도 되는 것이다. 세상은 「굴러오는 복이 있고 ,날라 가는 꿈」도 있는 것이다. 앞강물이 뒤의 강물에 양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조병화 시인의 「의자」는 한 때는 내 의자였지만 이제는 남의 의자인 것이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임자기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는 것이고 인연이 다한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중국 제나라 환공은 오패의 하나였으나 죽어서는 며칠간 장사를 못 지내 시체에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진시황은 최초로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조고와 이사의 농락으로 유고는 뒤바뀌고 주검은 소금마차 신세를 졌다. 제갈공명은 천문지리에 능통하고 병법에 정통하여 비바람을 부르고 귀신을 부릴 줄 알아 수명의 연장을 시도했으나 무산되고 「죽은 공명 산 사마중달을 물리치는」 계책마저 내놓았으나 세상은 그의 생각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항상 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믿지 못해서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다면 불행한 것이다. 정상이나 정상에 근접했던 사람들은 자기의 전성시대는 갔음을 알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마음을 격동시키는 정치는 아예 무관심하고 무관여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을 통해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노리는 사람들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난날의 한국을 움직였던 실력자들에게서 생각의 얕음과 그릇의 작음을 발견하고 있다. 이들이 계속 권위자나 원로로써 남지 못하고 간섭과 참견으로 보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사회를 흔들며 사람들의 편 가르기를 시도한다면 나라의 꼴도 우습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명예도 실추되는 것이다. 권위나 명에가 얼마나 얻기 어려우며 지키기 어려운줄 그분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나는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거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박복을 인정하고 부덕함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정점으로부터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생각은 사통팔달하며 산보하며 소요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초들은 아직도 한 때 아침저녁으로 뉴스에서 본 얼굴들이 우리들의 지평보다 더 상위이며, 이제는 신선이 되고 도사가 되어 있었다고 전해 듣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