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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형일(解刑日)은 언제인가? (2)카테고리 없음 2019. 4. 6. 15:33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시가 소수를 뽑아 그 관문통과가 어려울 때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법조계의 한 인사가 당시 합격기를 썼는데 「해형일(解刑日)」을 제목으로 뽑았다. 시험 준비과정을 형기를 사는 것으로 비유한 그의 안목도 빼어나지만 「인생을 부둥켜안으며 살아야 한다.」고 평소 생각한 청년기였던 나에게 전달되는 그 단어들의 의미는 깊었고 무거웠다. 파도에 의해서 씻겨지는 모래처럼 내 기억도 지금은 씻겨 내려가 많이 닳고 일그러졌지만 「해형일」만은 두고두고 스님들의 참선제목처럼 내 인생의 마디마디에서 붙들고 씨름하게 되었다.
해형일이란 보통 감옥에서의 석방일이나 출감일을 말한다. 죄를 지어 그 대가로 형기를 사는 사람에게는 형기만료일 또는 형기해제일은 그야말로 손을 꼽거나 학수고대하는 날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읽은 「철가면」과 「몬테 크리스트 백작」이나 스티브 맥퀸이 주연해서 너무나 잘 알려진 1973년 작 영화 「빠삐용」을 통해 감옥생활이 얼마나 비참하고 탈출을 부추기는가를 알 수가 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베리아 유형의 체험이나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볼 수 있듯이 유배지나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질곡이며 사람을 짐승의 지경으로까지 떨어뜨리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왕조국가일 때 왕의 눈에 나거나 반대편의 모함으로 인해 귀양을 가서 새날(임금의 사면이나 왕의 교체)을 기다리는 정치의 패배자들에게서도 또한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릇 감옥이 나쁜 것은 자유가 구속되는 되는 데에 있다. 신체가 공권력에 의해서 구금상태가 되고 억류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헌법이나 각종의 법령에 의해서 보장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며, 법으로 금지되지 아니한 것들에 물리적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유를 구속당하고 자유의사가 제지를 받으며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일들을 강요받을 때 그것은 부자유요 부적절한 것이 된다. 그것은 또 참담함이 되어 수치가 되고 모욕이 되며 곤궁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간」과는 반대편에 서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은 고꾸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꼭 실정법을 어기거나 공포정치에 의한 억류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야기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의 어느 사람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일 수도 있으며 젊음이 억제되는 병영생활일 수도 있다. 그것은 또 사막으로 오지로 4―5년 돈을 벌려고 나선 사람일 수도 있고 1―2년을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고 고독과 싸우는 원양어업일 수도 있다. 그것은 질병과의 목숨을 건 투병을 의미할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생활이거나 인생은 고해라는 말처럼 삶 자체가 그것일수가 있으며 한하운처럼 삶 전부가 형기라고 규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형일을 기다리는 사람은 의외로 많으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모종의 형기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확실히 「괴로움이 없다면 슬퍼할 게 무에랴!」는 어느 흑인노예들의 노래처럼 괴로움과 슬픔은 우리를 놓치지 않으며 우리는 뗄 수가 없기 때문에 세상을 감옥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고 유형소라 불러도 맞는 말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형기를 살듯 참을 수 없고, 자존을 지키며 살지 못하는 것도 그 부끄러움이 형기를 사는 것과 같다면 우리는 늘 해형일을 기다리며 산다고도 볼 수가 있으니 나도 예외 없이 해형일을 노래하며 살아온 것이다. 젊었을 적에는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금욕을 하고 나이 먹어서는 갖가지 고뇌와 번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구속 시켰다. 세상일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한 장군의 명성 뒤에는 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의 희생이 있어야 하고. 놓친 고기가 더 크며, 가지 않은 길이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법이다. 또 어디 이뿐인가 뜻이 있는 곳에는 평탄한 길보다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으니 나는 언제나 형기를 살듯 불안하고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자유를 희구할수록 점점 조여드는 올무의 짐승처럼 나는 피폐되고 궁핍하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2000년 전의 어느 철학자의 탄식은 오늘 또 나의 탄식이 되며. 7―8년 쯤 이리저리 말씀을 듣기 위해 헤매다가 원주의 어느 동산에서 노학자들로부터 들은 「나는 지구 밖의 어느 별에서 귀양 온 신세라」는 코멘트가 오늘 수긍할 수 있는 요설로 다가오고 , 「고통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이 참언이나 복음으로 들리는 것은 오늘의 나를 여과 없이 집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하면 나는 신심도 없거니와 도력을 닦은 일도 없어 구원의 확신이나 성불은 감히 생각할 수는 없다.
다만 사형수나 무기수들이 죽어야 감옥을 벗어나는 것처럼 나도 죽어야만 -오래된 저주에서 풀리고 오래전의 마법에서 풀리듯이 -인생의 형극에서 풀리고 유형의 인생이 끝나는 것임을 어렴풋이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세상이 지향하는 것과 대척점에 있고 나는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에서도 변두리에 머물렀고 가파르게 살고 있으며 주류층이나 중심세력이 되지 못했으며 그 흔한 조작이나 기획된 흥행이나 각광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겨우 괴로움만 참을 줄 알뿐이며 내 살아서 해형일을 보고 싶지만 인연 없음과 척박함이 그것은 난망이고 무망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형일은 언제인가?」라는 나의 오래된 노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7월 28일 홍천 팔봉산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