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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 결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임을 향한 행진곡」은 유령으로 배회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임을 향한 행진곡에서「임」은「대한민국」이자「광주정신」이라고 하였다.
왜 이렇게「임을 향한 행진곡」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가? 혹시 베토벤이나 바그너 같은 대작곡가가 작곡해야 되는 데 그렇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베토벤이나 바그너 같은 사람들이 작곡해야지 가치 있는 노래라는 관념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고. 그 밖의 것들은 다 불량하고 의심스럽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프랑스 국가「마르세이유의 노래」는 프랑스 혁명기 때 가난한 아마추어 작곡가 루제 드 릴 대위에 의해 단 하룻밤에 태어난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의용행진곡」은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영화의 삽입곡이지만 당시 중국인민들을 일치단결하게 만들었다.
한 나라의 국가나 기념식 지정곡은 국가주도나 관주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생명력과 애착을 갖는다는 것을 많은 나라의 국가들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노래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래민요「새야, 새야, 파랑새야.」나 중국의 수많은「악부시(樂府詩)」처럼 서민적이고 사실적일 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임을 향한 행진곡」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저 굴원에 시원(始原)을 두고 소동파에서 한 번 융기했다 송강 정철에게서 대미를 장식하는「미인(美人)」도 외설스러울 것이고. 한용운의「님의 침묵」에서「님」도 색정적이라 비난할 것이다. 그러하니 조선 중기의 선비 권필이「세상풍정을 아는 것은 남녀간의 정을 아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은 결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인류 최고의 전기(傳記)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는「동시대인들이 한 인간의 위대함이나 한 작품의 위대함을 첫눈에 알아보는 경우란 드물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정도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츠바이크의 말에서「임을 향한 행진곡」이 자랑스러운 노래가 되고 빛나는 노래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임을 향한 행진곡」에서「임」은 앞서 정의장의 말처럼 대한민국이고 광주정신임을 생각하지만 더 나아가 민주주의요. 정의요. 진리요, 자유요. 사랑이요. 민족이요. 선(善)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임을 향한 행진곡」이 애국가 못 지 않은 노래이며, 애국가의 자격이 있으며(마르세이유의 노래나 의용행진곡에서 본 것처럼) 앞으로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러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굳건하게 지키고자 하는 보수의 가치들도 처음에는 불온시 당하고. 경원시 당했으며, 위험시 당했었다. 지금의「임을 향한 행진곡」을 두고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임을 향한 행진곡」은 보수를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과연 그 사람들은 이것을 알기나 할까?
2014 07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