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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는 상류층이 없다
    카테고리 없음 2019. 4. 9. 19:20

    「나사렛」은 예수가 어렸을 적 살았던 곳인데 「그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하지 않는 곳이었다.「나사렛 예수」는 예수를 조롱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을 예수가 살던 나사렛으로 비유한다면 생각의 비약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나라의 하늘에는 원귀들의 호곡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였다. 이 땅은 귤도 영원히 탱자로 만들만큼 척박하다고 소문도 났었다. 숱한 전란(戰亂)과 학정(虐政), 기아(飢餓)는 사람들의 원형질까지 움츠러들게 하고 좀먹는다고 사회학자들은 진단하였다. 누구는 산천도 그렇다고 하고 어느 누구는 산천은 빼야한다고 하였다.


    나는 작금의 한국의 위기를 「사람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지금 기득권자들은 인성과 인간성의 문제이고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면서 국민성 문제를 엉뚱하게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으로 끌어들여 원인을 덮고 진영논리에 함몰시키고 있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외쳤으나 패거리정치나 조폭정치이고. 그동안 자본주의를 한다고 했으나 담합과 특혜와 독점 등의 비자본주의적이었던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도 민주주의를 모독하고, 자본주의 한다는 기업인들도 자본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수출 3000억불을 달성한 지금보다 수출 300억불 시대가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이 현상을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민초들의 질곡(桎梏)과 도탄(塗炭)의 역사가 그 말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빠르게 빈부의 양극화가 시장의 실패와 정책의 부실로 확대되고 심화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국부는 늘어나도 그 혜택은 재벌과 오너 가족, 그에 기생하는 소수의 무리에게만 돌아가고 도시의 노동자나 농어민, 자영업자들은 오히려 풍요속의 빈곤에 빠져있다.


    나는 한국의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오고. 그 중심에는 부유층이 있다고 본다.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사회는 그것이 옛날의 부족연맹체이든 세계정부이든 다스리는 사람이 있으며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있고. 20대 80이든 5대 95든 차별과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상류층은 윗물과 같아 그들의 도덕성과 정신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나 사회의 청탁(淸濁)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들 주지하다시피 저급이고 저질이며 저차원이고 조악(粗惡)한 가진 자들만 있어 그들에게 「고귀한 신분에 고귀한 행위」는 난망하다. 명색이 나라이지 사실은 각인이 할거 하며 각인에 대항하는 상태인 것이다.


    요즈음 수구언론들은 민생이 피폐한 것을 기화로 과거 개발독재시대를 그리워하는 논조를 쓰고 불균형성장이 좋았다고 그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국민들을 상대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민생에 만족이나 충족이란 것은 없으며 오늘날의 많은 문제가 그때부터 생성된 것을 생각하면 자숙하면서 정부에 조언 같은 고언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하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하는 것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구체제는 청산되어야 하고 잘못된 것은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그때는 선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시대가 변한 것이다.


    우리 서민들은 그간 불균형성장에도 불만 없이 참고 견디면서 우리도 저들과 같이 잘 살줄로 알았으며 전체가 잘 사는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고 오히려 삶은 나락으로 떨어져 나의 자식들은 임금노동자로 세습이 되고 새로운 신분제 사회에 살게 되는 등 사람 사는 세상과는 반대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제2의 홍경래 나 제2의 전봉준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 해방이후 많은 기업인들이 명멸했지만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만 빼놓고서 제대로 된 경영인이 없었다. 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과연 일본의 경영의 귀재라는 마쓰시다 고노스께(松下幸之助) 회장만큼 인간을 사랑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그들은 갖가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며 정경유착의 발원지이며 집안 하나 다스리지 못한 것 아니던가?


    옛날부터 이 나라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거나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뜨리는」는 나라였고, 「사람을 나무에 올려놓고서 흔들며」「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나라였다. 또「샴페인 일찍 터뜨리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우리나라 부유층이 상류층으로 변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본다. 백년하청은커녕 천년하청도 어려운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속고 속이는 거짓과 술수의 경연장이 라 할 수 있다. 고슴도치가 제 새끼 귀여워하듯 자기의 아류나 부류만 총애하며 발탁하고 중용하고 있다. 「저들도 우리처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인간적인 것은 모두 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열린 사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높은 자리나 큰 부는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의 마음이 충만한 사람만이 합당한 것이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큰 선은 큰 악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으니 그것을 기대하고 꿈을 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무지렁이가 과연 그런 복이 있을까?


    2007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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