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황진이의 얼굴을 그려본다
    카테고리 없음 2019. 4. 10. 18:37

    주희님! 

    저는 어렸을 적 선친으로부터 「너는 맘이 용해서 탈이구나.」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여린 자식이 「험난한 강호」를 헤쳐 나가는 것에 대한 불안한 부모의 심정이자 자식에 대한 당부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어느 작문 시간 때 「나는 시바이쩌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글을 써서 선생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고 「네가 시바이쩌 박사같이 생겼구나.」하는 과분한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안해와 결혼하기 전, 처가의 유력한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은 너무 이상적이다.」 라는 말을 전해 듣고 풍기는 것이나 생각이 이상적인 것도 죄가 되는 이상한 경험도 하였습니다. 저는 청년의 날에 사주와 관상에 대한 책을 많이 봤는데 아마 본격적으로 그 방면으로 나아갔더라면 아마 대성(?)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의 얼굴을 보면 첫인상에서부터 조목조목 뜯어보는 것까지 이른바 feel이라는 것이 옵니다. 가끔씩 지하철을 타면 유심히 앞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고민과 기쁨, 수심과 애환을 헤아려보기도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로부터 「착하게 생겼다.」「마음씨가 곱다.」 「온후하게 보인다.」「인자함을 느낀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서 한 것인지 기품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기품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거짓이나 아부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들은풍월은 있어서 그래도 내가 괜찮게 살아왔음에 한껏 고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는 매일 범죄를 지으며 계산기를 두드리며 교언을 지껄이고 웃옷 속에는 비수를 감추고 있음을 부끄럽고 또 부끄럽게 여깁니다. 고독한 전도자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가 실은 나(我)이고, 나는 매일 죽는 남자입니다.


    주희님!

    확실히 「사람 나이 50 이 넘으면 여자의 얼굴은 청구서이고,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이다.」라는 시정의 말은 역시 예사말은 아니었습니다. 링컨의 「사람 나이 40 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위인들이나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몰래 관상을 봤다는 속설은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자 감정의 동물인데, 그것이 바로 표현되는 곳이 얼굴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곳, 정신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정의한 것은 역시 지혜롭습니다.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은 인생의 계급장이고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간판이라는 말은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

    -비밀 행적 생각- 이 들어있다는 경험적 공감이자 압축된 의견입니다.


    주희님!

    우리는 주위에서 곱고 깨끗한 얼굴의 소유자를 만나서 말을 걸어보면 마음씨도 곱고 생각이 반듯함을 발견합니다. 선한 것을 소망하면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뜻이 웅혼하면 그것이 얼굴에 드러납니다.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고 9년 동안 수도하면 그 형태가 돌에 새겨진다는 말에서 사람의 얼굴도 이와 다름없음을 보게 됩니다.

    성직자나 예술가나 석학들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수긍하게 됩니다. 독심술이나 독안술(讀顔術)이 별것이 아니라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평범한 이치의 적용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렵고 힘들게 살았어도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고 두껍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존(自尊)하고 위의(威儀)를 갖출 때 얼굴도 빛이 나며, 스스로 단정(端正) 하려 하고 단아(端雅)하려고 애쓸 때 얼굴도 환 해 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상과 배려 같은 낱말들은 인간을 고귀하게 합니다. 고귀한 얼굴에 고귀한 정신이 깃들며 , 반대로 고귀한 정신이 고귀한 얼굴을 만들기도 할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귀족은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귀족정신을 가진 사람이며 , 귀족정신은 사람의 얼굴을 우아하게 하고 고상하게 함을 믿습니다. 향나무는 아니지만 향나무의 향을 내뿜으며, 천리마는 아니지만 천리마의 기품을 가질 때 얼굴은 옥안(玉顔)이 되고 자세는 웅좌(雄座)가 됨을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심지어는 남녀 간의 일까지도 그럴 것입니다.


    주희님!

    주희님은 저보고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렸고 놓쳐버린 진실을 상기(想起)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얼굴이 돼지(탐욕)나 호랑이(사나움)이나 여우(교활)같은 형색을 띠지 않아야 하고 야차(夜叉)나 악귀의 형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부처님의 눈에만 부처가 보였지만 오늘날은 내가 부처님의 생각을

    하고 그것을 닮기를 힘써야 부처님의 얼굴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은 꿈만이 아니라 얼굴의 모양도바뀌는 기적도 일어남을 압니다. 그냥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삶이 녹아있고 인생이 흐르는 얼굴을 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험난한 한국사(韓國史)처럼 험한 삶을 살아오다 보니

    원래의 순진하고 착하고 앳된 얼굴들이 인색하고 표독스럽고 피곤한 얼굴로

    변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천사의 얼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죽어야지 짐승의 얼굴을 하고 죽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이제 누군가 자기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고 가치를 매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얼굴은 0.1mm의 피부두께를 가지지만  그것이 코드가 되어 내 뜻과 생각이 간파당하고 살아온 날이 추적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희님!

    저는 과거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의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석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했을 때의 얼굴 모습과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하늘나라를 본 얼굴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만면(滿面)에 무아지경(無我地境)이자 exstasy이자 백치미(白痴美)로 넘쳤을 것입니다. 로마와의 운명을 건 결전에서 패하여 이집트로 소아시아로 유랑하는 한니발(Hannibal)의 얼굴은 체념으로 일그러지면서 거칠고 초췌했을 것입니다. 세 남자를 섬기면서 봉건 여성의 슬픔을 안고 살아야 했던 채문희(蔡文姬)의 얼굴 모습은 그녀의 詩「비분(悲憤)」

    처럼 기구한 운명을 원망하는 것으로 가득 찼음을 보게 됩니다.


    다시 조선의 임제(林悌)와 황진이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 잔들어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는 시조를 지어 황진이의 무덤에 곡(哭)한 사나이요. 죽을 때 「 오랑캐들은 중국을 정벌했는데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애석하니 내 죽음에 곡을 하지 마라 」는 임제의 얼굴은 전형적인 대장부의 얼굴 모습같이 눈빛은 강함을 숨기고 부드러웠을 것이며 오뚝한 콧날에 꽉 다문 입술하며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늠름한 기상의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황진이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상사병을 앓다가 죽은 총각의 죽음에 자기 속곳을 벗어 주고, 화담(花潭)을 알아봤으며 사후 자기의 주검을 짐승들의 먹이로 내놓는 것 등 사려 깊고 다정다감하며 지평의 시각도 넓은 그녀의 행적으로 추측을 해보면, 얼굴은 슬픈 봄날의 모란꽃 같아 화사하면서 정신과 교양의 아름다움을 맘껏 나타냈을 것이고, 맑은 눈빛에는 이따금씩 우수를 머금어 보는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을 것이며,  미간에는 한 가닥 희미하고 가느다란 주름이 있었지만 아무나 쉽게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당시의 여인들이나 사대부들이 감히 생각 못할 우주를 향한 그리움과 영원을 향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볼은 언제나 은은한 엷은 색조를 띠면서 입가에는 고혹적인 미소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은 차마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가  서려있음도 살짝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디국의 금 빼지를 반납하는 주희님처럼 순백의 얼굴에다 죽을 때 까지 흐트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자세를 가졌을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2월 7일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