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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자는 58세 때부터 13년간 세상을 주유하였는데, 생명의 위협을 받고 굶주리기도
하였지만 춘추를 짓는 등 정신이 무르익어서 이 기간이 그의 일생 중 백미(白眉)
이자 압권(壓卷)이었다. 노익장(老益壯)은 중국 후한 때 마원(馬援)이라는 사람이
나이 62세에도 자청하여 전장에 나가 혁혁한 공을 세움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는 이제 나이가 50 가운데를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게 꿈을 꾸며 환상에 젖기도 한다.
나는 내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알 수는 없다. 죽음이란 도둑같이 몰래 오는
것이라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부르면 갈 수밖에 없지만-
가능하면 옛날 이스라엘의 히스기야왕이 죽을병에 걸렸으나 하나님께 간구하여
15년의 생명을 연장한 것처럼. 옛날 우공(愚公)이란 노인이 태산(泰山)을 옮기면서
수대(數代)에 걸쳐 옮기겠노라 천명하자 태산의 신이 놀라 스스로 옮긴 것처럼
그렇게 하늘에 매달리며 청원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것만이 나를 번민하게 하고 고민하게 한다. 이것만이 나를 전전반측(輾轉反側)
하게 만든다. 누가 임중도원(任重道遠)이란 말을 내었는지 모르지만
오늘의 나에 딱 맞고 장차 나를 묘사한 것의 그럴듯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역사적 사건들에 들어가 역사적 인물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알고 싶은 것의
20%도 못 들었다. 즐비한 고전 속에서 문향(文香)에 취해서 죽고 싶으나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고 허락된 건강도 여의치 아니하며 주위환경도
아주 비우호적이다.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독서를 통해 세상을 알고 세상을 촌탁해 본다. 여기에서만은
지적 사치를 마음껏 누리고 지적 분탕을 한껏 해댄다. 역대 제왕들이 누리지 못하고
신선이어야만 누릴 수 있는 밀월(蜜月)의 즐거움을 책속에서만은 만끽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사명이 사람들에게 「늘 온후하고 정직하되 한두 번은 의로워져야
한다.」를 말하며,「짧은 인생을 우미하고 기품 있게 살다가 위엄 있게 죽는다.」를
전파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나는 이 의식이 있기 때문에 좌절할 수 없고
이러하기 때문에 낙담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지금은 감동이 없는 시대이고
감동도 모르는 시대이기 때문에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 사람들의 육성(肉聲)을
직접 들어야 하는 것이다.
싯달다가 28세에 아름다운 왕비와 아들 라훌라를 떠날
수밖에 이유를 직접 듣는다면 사람들은 명쾌할 수 있다. 솔로몬이 지상 최대의 영화를 누리고서 「해아래 새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의 이유를 솔직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보다 명료할 수 있다.
사람의 말이 호소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영향력을 가지려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솔선수범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지위와 높은 신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들어도 흘려버리고 들어도 코웃음을 친다.
내가 아무리 돈 못지않게 세상에는 좋은 것도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냉랭하다.
그러나 이건희 삼성회장이 스님이 되고 장영신 애경회장이 수녀가 되어 돈은 역시
하찮은 것이라 말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자체가 극적이고
박진감 있는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2.
그렇다면 글 쓰는 것도 그저 그렇고 고만고만하고 감동이 없으며 기품이 없다면
글의 목적하는 바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식을 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안(心眼)이 열리고 영안(靈眼)을 갖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나는 꾸준한 독서를 통한 글쓰기가 내 인생에 진전을 이루며 생동감을 갖게 하고
숙성되게 함을 안다. 그래서 독서는 나의 자랑이자 나의 저변인 것이다.
나는 책속에서 인류 최고의 휴머니스트 노자를 만나서 그의 도덕경 강해를 경청하고 월명사(月明師)를 만나 왜 「제망매가(祭亡妹歌)」가 그리도 남의 애간장을 끊어지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탁문군(卓文君)에게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연애를 표명하였으며,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따라 작부(酌婦)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용기 있는 자세였다고 극구 칭송하였다.
날아가는 기러기가 떨어졌다는 미인 왕소군(王昭君)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서 봄이 봄 같지 않다는 시인들의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내 마음에 봄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는 말에 나는 흠칫 놀랐었다.
나는 오장원(五丈原)에서 숨지기 전의 제갈공명을 만나 왜 유비의 고명을 받아들여 황제가 되지 않았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는 자기를 알아주는 유비를 차마 인간적으로 배신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다시 유비가 당부를 해도 그럴 것이라고 자못 비감스럽게 말하였다.
말하는 그도 울었고 듣는 나도 울었다. 비운의 여인 채염(蔡琰)을 만나보았다.
세 남자를 섬긴 여인답지 않게 우아하였으며 귀품이 넘쳤다. 저 외모와는 반대로
내적 갈등은 극심했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못내 괴로웠다. 역시 그녀의 시
「悲憤」은 일상의 삶이 아닌 비상한 삶이 연민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아!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것은 지적 갈증이 되어 옛사람을 만나게 하고 옛글들에 취하게 하며 묻고 또 묻게 하는 것이다.
다시 조선으로 와서 황진이를 만나본다. 화담선생과 걸었던 박연폭포 가는 길을
오늘은 나와 둘이서 호젓하게 걸어본다. 여인의 향기는 물론이려니와 품향(品香)은
코를 찔러 나의 자세를 흩뜨려 놓는다. 교교(皎皎)한 달빛아래 바람소리가 들려주는
월광곡(月光曲)은 운치를 더해 주고 정자에서 대작(對酌)하며 시를 주고받는데
그녀의 단아함은 보고 또 봐도 조금도 싫지가 않았으며. 눈가에 살짝 비치는 수심은 차라리 그녀를 더 돋보이게 하였다. 잠시 순간에서 영원을 산 것이었다.
고운(孤雲)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고운에게 해운대 해송(海松) 밭을 거닐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으며 가야산으로 은거를 택한 이유를 물으니 그는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웠다. 천년이 흘러도 내 외로움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하며 더 묻기를
사양했다. 나는 오늘은 여기에서 질문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으면 물을수록
알면 알수록 슬픔은 안개처럼 젖어오고 그리움은 구름처럼 피어오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으면 어차피 규칙대로 우주로의 여행(미래)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는 과거로의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서 후세인(後世人)에 의해서 그들의 뜻은 왜곡되지 않았는지 그들이 충분히 해명을 했는지 확인할 것이며, 또 미처 말하지 못한 것, 더 말하고 싶은 것들을 전달할 것이다.
3.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을 돕는다.」는 말이 있
어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다. 나는 앞선 분들이 세우고 다듬고 닦은 것을
「공공재(公共財)」라는 이름으로 거저 얻으니 후대인의 이로움인 것이다.
나는 내 지평이 더 열려야 하고 상상력은 끝이 없어야 하며 생각은 막힘이 없기를
바란다. 고전이라는 바다에서 때로는 서핑을 하고 때로는 원양항해를 하고
역사라는 산맥에서 재사가인(才士佳人)들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발견해야 한다.
나는 지금이 내가 다시 눈이 뜨이고 다른 것에 접목하는 제 3의 탄생을 겪는다고
보고 있다. 이 제3의 탄생은 「투사 삼손」이나 「참회록」과 성격을 같이 하며
노신(老臣)과 노마(老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이
절정기이고 적기에 있으며 적시에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쟁탈에 있지 않고 봉사에 있다.」는 쑨원의 말은 오늘날에
더 크게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어느 지기로부터 프랑스 파리에
있는 「카타콩바」라는 뼈들의 저장장소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은 파리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공동묘지들의 뼈들을 거둬서 한데 모아놓은 장소라는 것이다.
또 며칠 전에는 「5000년 포옹의 유골」이 이탈리아 발다로에서 꼭 껴안은 채
발견되었는데 남녀로 추정되는 두 해골이 마주하며 다리와 다리가 겹쳐있는
사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후면 지금 숨 쉬고 있는 사람은 어느 한 사람도
-갓 태어난 아기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 어쩌면 파리의 그것들처럼 뼈와 뼈들이
엉켜있는 것이 더 안온할 수가 있고 발다르의 그것처럼 해골과 해골이 마주하며
다리뼈와 다리뼈가 겹쳐있는 것이 더 행복할 수가 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해골은 어느 이름 없는 산기슭에 굴러다닐 수 있으며, 어느 스님이나 어느 짐승의
물바가지로도 이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눈을 들어 우주를 조망해야 하는 이유이고 눈을 고정하여 역사와 대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신이 우위에 서고 정신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도를 전하는 것이고 법을 전하는 것이고 경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기에서 전령사이자 파발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석가모니가 6년간의 고행 끝에 성도(成道)를 하고 공자가 13년의 유랑 끝에
일가(一家)를 이루며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고 마호멧이 알라의
소리를 듣기 전 열병을 크게 앓은 것이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결사적으로 했다는데 적이 놀라고 두렵다. 그분들도 결사적으로 했는데 하찮은 나는 물어 무삼 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하늘과 인간간의 관계가 「상명하복」의 관계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하늘이 시간과 건강을 정해놓고 나에게 운명을 강요하고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며, 바꿔달라고 할 것이며, 인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만은 철저하게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며 항명을 할 것이다.
그것도 죄라면 나는 그것을 「감천죄(感天罪)」라 부를 것이다.
2007년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