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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지사는 그리운 이름이다카테고리 없음 2019. 4. 13. 22:16
1.
요즘은 우국(憂國)이란 말이 생경하게 들리지만, 아직도 우리 뇌리에는 한말(韓末)이나 일제강점기 동안 만주나 상해 등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지사(志士)들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된다. 확실히 우리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국이란 단어를 잊어버렸고 그것은 필경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을 하고 있어 나라 걱정할 필요가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격(國格)이 훼손되고 국민의 꼬라지가 말이 아니어서 나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우국이란 말에는 그 말 풀이에서 보듯 나라를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이라 그 전제로서 나라의 위난을 상정하는데, 우리는 나라의 어떠한 위난도 원하지 않으므로 이 말이 사어화(死語化)되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국사란 것도 여염집처럼 모두 좋은 쪽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며 시정에서는 나라가 망한다니 나라가 망할 징조라니 하며 모두 손사래를 치며 오늘날처럼 지도층이 경박하고 사회의 기풍은 가라앉으며 사람들을 퇴화시키는 시대에서는 비록 고색(古色)이 묻었지만 우국을 다시 닦아내어 조강지처(糟糠之妻)대하듯 나라 걱정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많은 우국지사들이 있었으니 잦은 외침을 당하고 국운이 뒤뚱거릴 때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운 이름 삼학사(三學士)의 충절은 물론이요가까운 시대만 보더라도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등에서 민족주체성과 민중의 혁명정신을 고취한 단제(丹齊)선생, 이토오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남아의 의기를 떨친 안중군 의사 등이 대표적이라면 나라 밖에서는 우국지사의 비조(鼻祖)요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나 홀로 푸르며 (獨靑) 나 홀로 깨어있으리(獨醒)’으로 잘 알려진 중국 초나라 대부 굴원(屈原)은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독일 국민들에게 고함’으로 유명한 피히테(J G Fichte)는 언제나 들어도 신선하다.
국난기 때 우국지사들의 목적이 외세의 배격과 국권의 수호였다면 규범부재요 마치 120년 전 개항기의 때를 연상하게 하는 격동의 오늘에는 무엇을 위해 나라를 근심하고 염려할까? 나는 그것을 ‘현대적 의미의 우국’이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지목한다.
1.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존속과 번영
2.다양한 가치, 다채로운 사상 이념 신념 양심의 존중
3.가난과 무지, 병고와 공포로부터의 해방
4.춘주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처럼 개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으며
16세기 영국처럼 양이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인간이 존중받는 나라가
그것일 것이다.
3.
우국이란 앞에서도 밝혔지만 평화 시나 정상상태에서도 숨 쉬며 아름답지만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는 비상시국에서는 더욱 빛나고 필요한 것이다. 국권의 소멸이나 외세의 침입에는 무장투쟁을 하기도 하며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나 우리 사회의 방향설정 등에는 사자후로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도 각인은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우국의 길인 것이다.
언론인은 예리한 필봉으로 사회정화를 도우며 종교인은 진실 된 예언으로 군인은 국가의 초석이자 간성이 되겠다는 결의로 작가는 글을 날랜 검으로 삼아 비인간적인 것을 몰아내는 등으로 우국충정을 나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우국은 성격상 만인의 것이 아닌 소수 지식인의 전유물이자 특권이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는 필부필녀도 팔을 걷고 나서야 하지만 모두가 다 직분이 있는 이상 시대정신과 시대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요구되는데 지식인야말로 이 요건들을 잘 충족하기 때문이다.
17-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여러 혁명이나 인간화의 이론적 제공자인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들도 면모를 일신하여 나라의 탈바꿈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식인들이란 ‘힘없는 환상가’일 수도 있고 불의한 권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 한 것도 많았지만 먼저 깨달은 자로서의 위치나 선악판별능력에서나 자긍심 등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그들의 방부제 역할 예언자적 기능을 기대하는 것이다.
4.
우국지사는 예나 지금이나 앎의 집대성자(集大成者)인 동시에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성인이며 교양인이며 독서인이기도 하며 열혈아이며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나라야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egoist나 사회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냉혈인은 우국을 운위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에서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는 구절에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한 송이 꽃에도 눈시울이 뜨거우며, 새소리 마음 더욱 설레는‘ 심정을 가진 다정다감한 사람만이 나라의 진로나 대의를 의론하고 고민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우국은 행동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단순히 마음먹어서도 아니 되고, 뜻 자체로서 그쳐서도 아니 된다. 고루심처(高樓深處)에서의 한탄이 되어서도 아니 되며고, 공허한 탁상공론이어서도 아니 된다. 그것은 피울음의 메아리로 넘쳐야 하고 흔들림 없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국은 또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을 존중하는 데에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급부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열조(烈祖)들이 묻혔고 내 삶의 터전이며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이 금수강산을 사랑하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심심한 동질의식을 느끼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 균등 박애라는 공의감정(公義感情)에 마음이 동하고 생각이 통하는 것이다.
5.
우국은 또 공적인 것을 중히 여기는 성질을 띠고 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 나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위선이다. 우리나라는 공(公(보다는 사(私)가 앞서는 경향이 있으며 사람이 두 가지 일을 원활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은 보통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우국의 뜻을 펼치다보면 때로는 부모형제나 고향을 등질 수도 있으며 더한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구지사란 ‘보물 있는 곳에 마음 있다’는 것처럼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이 오직 나라의 융성과 번영에 쏠려있는 사람이다.
우국은 우리사회에 연면하게 이어져 오는 선비정신에서 연유한다. 구국의 경륜이 그 손안에 들어있으며 사특한 것을 배격하고 당위만을 좇으므로 소인은 가까이 갈수도 없는 것이다. 끝으로 우국은 그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한다. 마치 깊은 물은 소리가 없는 것처럼 음지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일을 추진하지 공명을 노려 떠벌리지 않는다. 이것 역시 우국의 미덕인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대권주자들 중에 우국지사의 성정과 풍모를 볼 수 없다면 이것은 나 개인의 불찰일 것이다.
2006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