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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가벼운 시대카테고리 없음 2019. 4. 13. 23:09
1.
오늘날은 이름의 시대이다. 브랜드파워(brand power)가 돈이나 권력을 불러주고, 네임밸류(name value)로 순위를 따지는 시대이다. 갖가지 이름이 그 앞에 붙는 직함과 더불어 사회를 누빈다. 이른바 명성(名聲)의 시대, 명망(名望)의 시대, 명호(名號)의 시대인 것이다. 그야말로 이름들이 때를 만나 꽃이 만개하듯 이름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름은 좋고 그럴 듯한데 내용이 부실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수식이나 형용은 괜찮은데 실제가 못 따라 간다고 다들 말한다. 거기에다 요즘 들어 빛나고 묵직한 이름들이 -대통령, 총리, 장성 등-가벼워지고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름이 희화화하고 이름이 개그화하고 있다.
아무리 이러한 일이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고, 카타르시스(catharsis) 효과를 준다고 하나 이름이 홀대 받으며 이름이 박대 받는 것은 반색할 일이 아니고, 미간을 찌푸릴 일이다. 이름이 푸대접을 받는 것은 그동안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헌신한 분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옥석(玉石)구분 없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서도 안 되는 것이다.
2.
우리가 이렇게도 끈질기게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이름에 대한 기대치가 크기 때문이고, 예부터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지어미는 지어미다워야 한다는 유교문화에 익숙해서일 수도 있다 유방백세(流芳百世)라고 꽃다운 이름이 백세에 전함을 알기 때문이고, 삼각산 입구의 선정비(善政碑)나 공주 공산성(公山城)입구의 송덕비(頌德碑)가 그냥 세워지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자기 이름을 팔고 남의 이름을 팔고 조상의 이름을 파는 것은 내가 변변치 못하고 못나기 때문이며. 이름이 강가의 자갈같이 겨울 산의 가랑잎처럼 취급받는 것은 그동안 이름이 제값을 못했거니와 이름이 양산되고 이름이 남발되었기 때문이다.
3.
이름이 가벼워진 것은 시대적 업보 탓이다. 정실인사 코드인사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가 그것이라면 시대적 모순은 신구 세력의 각축이나 명분주의 요식주의 한탕주의 등에 의해서 야기되며, 시대적 흐름에 의해서 대세를 이루는 것은 권위주의의 붕괴, 근엄과 명예의 퇴색, 실질의 숭상 등이 이에 기여했다.
어디 이뿐인가? 그 많은 가짜 논문 가짜 학위 가짜 번역물 가짜 상장 가짜 직위 등은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고, 뻥튀기나 부풀리기에서는 입을 다물어야 할 정도이다. 이래서는 칭호의 정당성 공정성 우수성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매스컴에서의 세평이나 항간의 평판이라는 것도 그 사람의 겉모습만 그리거나 대충 아부용으로 인사치레용으로 몇 자를 쓰니 세상의 이름이라는 것들에 대해 의심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어느 날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인사가 갑자기 반역자가 되고 도둑놈이 되며, 몹쓸 사람이 되니 “이름”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모독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이름도 얻기가 쉽고 잃어버리기도 쉽기 때문에 “이름”을 가볍게 보고 “이름”을 우습게 아는 풍조가 만연돼 있다. 내용보다는 이름을 따지고, 실속보다는 모양새를 꾸미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그 이름에 그 실재가 걸맞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름을 조롱하며 이름에 조소(嘲笑)를 보내는 것이다.
4.
이래서는 따로 노는 기계처럼 사회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으며, 모두가 “가장무도회”에 나온 것 같아 책임이나 의무는 실종된다. 허명이 세를 얻고 허장성세가 활개를 치니 독버섯이 더욱 아름답고 개자 붙은 꽃들이 더 원색적인 것처럼 진짜 이름은 제풀에 자지러지고 모양이 우습게 된다. 과장(誇張), 과신(過信)은 시대의 상수이자 시대적 획기(劃企)로 돌변한다.
이러한 명과 실의 괴리, 이름의 가벼움을 바로 잡을 수는 없을까? 그것은 상 받을 사람이 상을 받고, 능력 있는 사람이 권한 있는 자리에 앉으며 이름을 얻는다는 것이 어려우며, 칭호를 받는다는 것이 어려운데 있는 것이다.
이름을 제대로 얻고, 이름을 제대로 간수하고, 이름을 제대로 보존하는 길은 그것에 합당한 이름, 명실이 상부하는 이름을 가질 때이다. 존귀한 이름은 아우구스투스(Augustus)처럼 존엄할 수 있으며, 위대한 이름은 징기스 칸(Genghis Khan)처럼 위대할 수가 있다. 비천한 이름은 도척(盜拓)이나 조영규(포은을 살해함),김질(사육신을 고변함),
홍종우(고균을 암살함)일 것이다.
이름을 아끼는 사람은 왕궁에서 자라지 않아도 예의가 넘치고, 이름을 아끼는 자는 만승(萬乘)의 천자나 천승(千乘)의 제후처럼 눈빛이 온화하다. 이름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식언을 하지 않고, 빈말을 하지 않으며 교언(巧言)을 멀리하며 참언(讒言)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5.
사람이 제 역할을 하고, 제 기능을 행하며, 책임 있고 분별력 있게 행동할 때 이름은 스스로 빛을 내며, 사이비를 만드는 사회의 제반구조를 혁파하면 이름은 더욱 존중 받을 것이다. 이름이란 스스로 지키고 받들 때 위엄이 있으며, 스스로 도울 때 명성이 보태진다.
특히 귀감이 될 만한 사람,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하고, 책임을 맡겼으면 흔들 것이 아니라 애정과 격려를 보내야 하며, 권한 있는 자는 끊임없는 자기수정을 통하여 완전에 가깝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긴다는 각오로, 금석(金石)에 이름을 새긴다는 결심으로 저 옛날 계포(季布)라는 이름이 신의의 대명사로 불리듯 미생(尾生)이라는 이름이 약속의 상징인 것처럼
무릇 우리가 다시 이름에 애정을 갖고 이름에 혼을 불어넣으며 이름을 아끼는 자세가 필요하다.
-끝으로 고독한 배회자 공구(孔丘)가 정치가 극도로 어지러울 때 먼저 “이름”을 바로 세우라고 한 것은 오늘의 한국을 생각하고 말한 선견지명일 것이다.
2006년 12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