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상아 젓가락에는 옥잔금배(玉盞金杯)가 따른다.
    카테고리 없음 2019. 4. 21. 16:12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불운한 세객이었던 한비자(韓非子)는 지도자가 희귀한 것이나 진기한 것을 즐기게 되면 정사를 멀리하게 되고, 신하들은 이에 영합하여 백성을 들볶아 나라가 어지러워지므로 철저하게 이를 금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도자의 절제를 강조한 탁견이다.


    역사에서 그 실례를 찾아보자. 같은 중국 은(殷)나라의 충신 기자(箕子)는 주왕(紂王)이 상아 젓가락을 쓰는 것을 보고, 이를 쓰게 되면 옥잔금배를 찾게 되고 미식을 먹어야 하며 예쁜 무희를 두어야 하고 화려한 궁궐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며 결국에는 나라가 피폐해져 망하기 때문에 이를 멀리 해야 한다고 간하였다.


    요즘 말로 말하면 국가재정을 생산적인 곳이나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써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향락과 방탕한 곳에 썼다는 것이다. 그럼 왜 직신(直臣)들은 목숨을 걸고 지도자에게 내핍과 검약을 요구하는가? 그것은 윗사람(대통령이나 고급관료)이 사치를 좋아하게 되면 나라살림은 고갈되고 백성들은 궁핍해져 나라의 존립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역대왕조의 유물이나 유적들이 문화재나 보물로 지정되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고 찬사를 발하게 한다. 그러나 그 예술품이나 사적(事蹟)의 뒤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과 노역이 서려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렇게 세상에서 완상(玩賞)이나 도락(道樂)으로 이용되는 것들은 그것이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보는 것이든 쓰는 것이든 간에 이름 없는 많은 민초들의 노력과 희생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들은 소수의 특권층이나 유한족 들을 위하여- 일반백성들의 굶주림과 헐벗음은 아랑곳없이- 진사품이나 특산품이라는 이름으로 진상되고 헌상되었던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프랑스의 베르샤이유 궁전 등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할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노예였고 전쟁에 진 포로였고 힘없는 일반백성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건축물이나 공예품들은 그들의 떠는 모습이며 원한이 곳곳에 배여 있고 분노를 삭인 자국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서는 감히 그것들을 가까이 하거나 옆에 두지 못할 것이다.


    대개 지위가 높고 돈이 있으면 신분의 표시나 자기현시욕으로 희귀한 것과 색다른 것을 찾는다. 이들은 보통사람과 차별되고 구별되기 위하여 또 취미나 낙이나 소일거리라는 핑계로 희귀한 것을 수집하고 진기한 것을 감상하는데, 앞에서 봤지만 이런 것들은 허영으로 유치하고 값싼 오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보통사람들이나 현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나 할 일인 것이다. 보통사람은 일상에서 만족을 얻어야 하고 노인은 과거에서 소일거리를 찾고 취미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사로 바쁜 그들에게 그것은 머리를 식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요. 정서를 순화하고 여가를 선용하며 여흥에 좋다고. 그러나 이것들은 공기나 물처럼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력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지도자의 덕목은 아닌 것이다.


    집안에 정원이 있고 기화요초가 자라며,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고, 물고기들이 노니는 정경은 한편의 그림처럼 아를다울 것이다. 거기에다 포석정(鮑石亭)까지 있고, 그라나다의 알람브라라면 목에 꽉 찬 것이다. 이것은 더욱 지도자가 취할 바가 아니다.


    -지도자는, 전복 따는 백성의 힘듦을 알고 전복을 먹지 않고, 소가 힘들게 쟁기 끄는 것을 보고 쇠고기를 먹지 않는 옛 사람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서라벌 십만 호가 숯으로만 밥을 지어 연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숯 만드는 사람들의 힘듦을 생각하는 어느 사람도 닮아야 하는 것이다.

     

    1996년 10월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