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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를 다시 생각한다.카테고리 없음 2019. 4. 23. 21:20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광복 몇 주년 하면서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벌인다. 올 2004년 8월15일도 예외 없이 그럴 것이다. 일제로부터 36년간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내나라, 내 정부를 갖는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것이고 진정으로 기뻐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이날이 광영의 날로 당연시 되고 경축과 경하로 들떠 있어야 하는 날인가에 대해서는 나는 의견을 달리한다. 물론, 나라 안에서는 창시개명을 당하고, 경제적 수탈을 당하고, 민족적 차별을 받고, 나라밖에서는 망명 등으로 의분을 드러내고, 풍찬 노숙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다.
특히 암울한 일제시대를 온몸으로 항거하여 오늘날 생존하신 분들의 감회는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없다고 본다. 그래도, 과연 이날이 그저 기쁘고 좋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온전한 독립이 아닌 남과 북이 나뉜 절반의 독립이기 때문에 가족이 생이별하는 아픔이 있었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고 남부여대해야 했고, 오늘날 북한은 굶어서 망하고 남한은 썩어서 망한다는 말처럼 모든 민족불행의 씨앗이 이 분단에 있고 이날로부터 비롯됨을 안다면 이 날은 서러운 날이요 쓸쓸한 날이요 통곡하는 날이지 정신없이 축하해야 할 날은 도저히 아닌 것이다. 그렇다! 그동안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분단으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세력과 남과 북의 음모가 들에 의해서 이 날을 도둑맞았고 , 바쁨과 소홀함으로 길들여져 왔고, 이 날을 회칠 당한 채 살아온 것이다.
나는 17년 전인 1987년 그 뜨거웠던 여름날 대학로에서 젊은 대학생들의 집회 때마다 분단 몇 년 이니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운동권의 상투적 표현인지 친북한 성향을 나타내는 구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젊은 사람들의 외침에서 다시 한 번 분단의 고통을 생각하고, 분단의 극복 없이는 이 땅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15는 지금처럼 연례적인 행사로서 대북제의나 하고 특집방송이나 하는 날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고심하고 분단의 의미를 고찰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숙연한 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로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국가라는 것이 철옹성이 아닌 바에야 남의 침략을 받기도 하고 국권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의 한사군 점령이나(이설이 있다.) 조선 인조 때 청에 의한 삼전도의 굴욕도 당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민족정기가 살아있고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민족의 얼이 살아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긴 역사의 시간에서 한 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했다 해서 떠들썩하는 것은 단견과 가벼움의 극치라 볼 수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 만주, 중국, 미국 등 외국에서 가족을 버리고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뜨겁게 헌신했던 분들은 이 자랑스러운 나라가,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나라가, 내 열조들이 묻힌 나라가 허리가 잘리고 형제간에 피를 흘리고 지금도 남과 북이 적개심으로 대립하는 것을 안다면 지하에서 슬퍼할 것이고, 그 깃점이 8,15이기 때문에 이 날을 서러워할 것이다. 하늘의 뜻이었든 , 힘이 없었든 간에 나라가 둘로 갈라져 많은 사람들이 헤어져야 했고, 수십 년 동안 국가안보란 이름아래 민주주의가 제약 당해야 했고, 인권이 제한당하며, 항상 위기의식에 살았고 오늘도 코리아 리스크라 하여 기업의 가치가 디스카운트 당하고
대륙과 해양으로의 웅비가 훼방 받고, 이념으로 극심한 내분분열과 대립으로 오늘도 피차 덕이 되지 않은 소모전만 계속한다. 저간의 모든 모순이 8.15부터 시작하는 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8,15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우는 것이 다행이라는 소성에 만족 해 하는 사람들 탓이든 호전적인 북한 공산정권의 계속되는 위협에 대한 이쪽의 자위수단 때문이든 지난 것을 들추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앞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지난날을 한번 돌아보자는 것이요, 사실에 기초하여 사실을 바로 알자는 소박한 충정 때문이요,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과거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 하며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8,15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15는 경축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픔도 같이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통성 있는 정부라면 이날을 그냥 전 정권들 마냥 답습해서는 안 되니 8,15는 광복과 더불어 분단의 의미로도 다가와야 하고 민족과 나라와 통일을 제대로 생각하는 하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나라가 바로서지 못하고, 계속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으며,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시작점임을 깨달아 이 날만은, 1년 중 하루 이 날만은 민족과 통일을 생각하는 엄숙하고 비장한 날로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땅이, 수천 년 동안 동고동락한 이 겨레가 나누어진 이 날은 국경일이면서도 국치일인 것이다. 이 날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군에게 예루살렘 성을 함락 당하자 그 회복을 기원하며 통곡의 벽 앞에서 애통해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날 휴전선 부근이나 전쟁의 기념지에서 분단을 서러워하고 고토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보자. 그러면 애통이 변해서 환희로 변하는 날이 될 것이다.
아무리 8,15가 천하의 8.15라고 해도 8,15해방이 남북한이 갈리지 않고 하나가 됐을 때 그 의의가 막대한 것이지 지금처럼 반쪽 독립에 증오와 갈등만 남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곱게 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의미가 반감되고 퇴색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외세에 의한 독립이었기 때문에 더욱 약소민족의 비애를 생각하고, 다시는 외세에 유린당하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하며, 자주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이제 이 날은 개천절 같은 경축하는 명절이면서도 현충일 같은 애통하는 날인 것이다. 광복절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조국분단일」로도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분단을 허물어 한민족의 저력이 돋보이고 대한민국의 힘이 배가되어 그 통합된 힘으로 우리나라도 한 번 세계 평화와 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이 우리 산사람들의 의무일 것이다.
2004년 8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