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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의 의리, 백성의 의리, 국민의 의리카테고리 없음 2019. 2. 19. 22:56
조선시대 후기 소론少論의 이인좌는 이복형 경종을 독살한 혐의로 영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아 반란을 일으켰으며, 윤구종을 필두로 한 노론老論은 후궁 장희빈의 아들이라고 하여 경종에게 「지켜야 할 신하의 의리가 없다.」고 했다. 또 명종 때 남명 조식은 그 유명한 단성현감 사직서에서 「왕이 몸을 닦는 것으로 사람을 임용하는 근본을 삼아서 지극한 이치를 세우소서. 지극한 이치가 지극한 이치로서 구실을 못하면 나라는 나라로서 구실을 못한다. 왕이 왕도의 경지에 이르면 나와서 왕을 섬기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왕의 신하되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라고 하여 군신의 의리를 규정하였다. 순조 때 홍경래는 「서토西土가 분토糞土처럼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그 격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바꾸어서 중국 춘추전국시대 5패의 하나인 초장왕은 갓끈을 끄르고 잔치(절영회絶纓會)를 해서 유명하다. 사족이지만 그때 목숨을 보전한 신하는 뒤에 장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왕자로 있을 때 위징은 태자 이건성에게 이세민을 죽이라고 강권한다. 그러나 현무문의 변에서 승리한 이세민은 위징을 중용한다. 북송 때 소동파는 개혁파 왕안석 등에 이해 역모혐의로 사형에 처해지려는 찰라 신종神宗의 은혜로 살아난다. 그리고 우리의 매천 황현은 「조선이 500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 비록 죽어야 할 의리는 없지만. 나라도 죽어야 되지 않겠는가?」하여 조선 선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막강한 시황제가 죽자 진나라의 용맹한 장수들은 쑥대가 무너지듯 다투어서 농민군들에게 항복했고. 아방궁은 백성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도선비기」「정감록」등이 끈질기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란길에 나서자 한양의 백성들은 경복궁에 불을 질러 「도덕적이지 못한 나라, 도덕적이지 못한 왕」에 대한 분풀이를 하였다.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고,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고.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며, 시장․군수가 시장․군수답지 못하고 기업인이 기업인답지 못하면 국민은 그 지켜야 할 의리가 없는 것이다. 지아비가 지아비답지 못하고. 친구가 친구답지 못하고. 스승이 스승답지 못하다면 그 사이에도 지켜야 할 의리도 끊어지는 것이다. 옛날에는 지켜야 할 의리로서 적통適統. 절개. 알아줌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지켜야 할 의리로서 「인명존중, 노블레스 오블리지. 관대함」등일 것이다. 지도자가 자기 측근들만 요직에 앉힌다면 그것은 소인배의 의리이다. 노조가 귀족노조화하고 집단이기주의로 전락했다면 국민은 후원할 의리가 없게 된다. 사법부가 전관예우의 악습을 계속 유지한다면 국민은 신뢰의 의리를 거둬들여야 한다. 법이 공정히 못하고 편파적이라면 국민은 법을 지켜야 할 의리의 여지도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하여 세계 10위권이라 히도 그것이 국민들의 실질생활에 도움이 안 되고. 몇 몇 기득권층 부의 세습. 부의 확대에만 기여한다면 우리 국민은 지켜야 할 국민의 의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도 「왕에게 세 번 간하여 듣지 않으면 신하는 떠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인지가 발달하고 민주적이라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확실히 옛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고 엄격했으며, 깨어있었던 것이다. 2009년이 저무는 때를 맞아 대한민국의 의리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2009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