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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카테고리 없음 2019. 4. 25. 08:33

    지난달(10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서 어머니를 뵈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든든히 생각은 하였지만, 자주 찾아뵙고 건강도 돌보아 드려야 하는데, 마음만 있을 뿐 그러지를 못해 항상 죄짓는 마음이다. 이러다가 갑자기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의 불효를 무엇으로 속량할 것이고, 그 은혜는 어디에서 갚을 것인가?


    못난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80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예나 다름없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식에 대한 관심의 10분의 1만 부모님께 가져도 효자」'라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님을 저절로 깨달았다. 이런 어머님에게 나는 언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어머님 생전에는 요원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더욱 나의 마음을 억누르고 무겁게 하는 것은 어머니가 이제 많이 늙으셨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님은 나를 당신의 년치 29에 낳으시고 나는 내 나이 여섯 살 무렵부터 어머니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내 어머니는 키는 작지만 무척 고우신 분이었다. 학교 교육은 못 받으셨지만 매우 총기가 넘치셨다. 억척스럽고 부지런함은 늙으신 지금까지도 감히 다른 어머니들이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고운 모습은 어디가고 그 영명함은 어디 가고 이제 내 앞에는 한 사람의 노쇠한 할머니가 서 있어야 한단 말인가. 세월이 나의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 세월이 어머니를 새색시에서 할머니로 만든 것이다. 어머님의 늙음이 나를 슬프게 하고 나를 괴롭혔다.


     내 아내 김아무개. 그녀의 나이 19살에 남도 땅 벌교에서 나를 만나 옛날 탁문군이 사마상여를 좇은 것처럼 24세에 나의 성공을 위해 힘을 합쳤다. 신혼시절에도 내 뒷바라지를 위해 온갖 고생과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나만을 믿고 의지하고 따른다. 그녀의 나에 대한 일편단심은 「조선의 여인」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겹고, 자식들에 대한 애정은 신사임당을 빼 닮았으며, 사람들에 대한 환대나 친밀감은 중국 명나라의 건국황후 마황후가 살아 돌아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나는 그녀가 언제까지나 젊었을 때의 용모를 꼭 간직하기 바랐으나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어 어느덧 40대 후반이다. 내 지금까지 가슴의 뜻을 펴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고 있지만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어간다는 사실은 나를 시름에 잠기게 한다. 나는 백발이 성성해도 좋고 지팡이에 의지하는 등 몰골이 사나워도 상관없지만 어머니나 아내는 나이 먹지 않고, 늙지 않고 강건하게 살기를 바란다. 세월이란 괴력이 나의 소망을 무위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진정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으니 양귀비 같은 아름다운 여인도 시저 같은 뛰어난 영웅도 세월의 떠밀림으로 인해 다 흙으로 돌아갔음을 생각한다면 세월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 일 수밖에 없어 세월의 자비를 구하거나 그 무심과 무정을 원망할 뿐이다. 아, 할 수만 있다면 일출 때에는 해를 묶어 놓고 중천에서는 해를 고정시키며, 일몰 때는 동아줄로 당겨본다. 3년 고개에 올라가 몇 백 번이라도 구르기도 하여 아기가 되어도 좋고, 혹 젊음의 샘이 있다면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역발상으로 노쇠함을 받아들여서 희끗희끗한 머리, 깊게 패인 주름살 등은 나무의 나이테나 강가의 모래톱처럼 그 각각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어 비밀 푸는 재미에 늙는 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어머니의 만져지는 손이 까칠하고 힘이 없지만. 태백산을 비롯한 해발 1000m 의 높은 산 곳곳에서 살아있거나 고사한 주목들이 강한 바람과 많은 눈 등의 온갖 풍상 속에서도 그 위풍을 자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진다.


    한 시가 중천금(重千金)이요 여삼추(如三秋)라는 것은 근래에 알았고, 세상의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고 하찮은 것이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나이 먹어야 만이 느끼는 기쁨이고 소득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생각만으로 어머니나 아내의 늙음에 대한 아쉬움이 가셔질 수 있을까? 


     2004年 11月 2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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