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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세종과 황희, 당태종과 방현령
    카테고리 없음 2019. 2. 19. 22:58

    부제-졸렬한 것들의 행진

     

    역사책을 읽다보면 언제나 커다란 두 봉우리, 조선 4대 임금 이도와 당태종 이세민을 만나게 된다. 나는 철저한 공화주의자로서 소수의 지배층만 살찌우는 전제군주들을 경멸하지만 봉건시대라는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인재를 알아보고 문화와 산업을 진흥시킨 세종과 당태종에게는 진한 호감을 갖고 있다. 차라리 두 사람은 왕과 황제로서보다는 한「인간」으로서 뛰어나며, 그 한「인간」은 숱한 왕과 300여명의 황제들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이 두 명군(名君)에게는 또 다른 명신(名臣)들이 반드시 드러나니 「꿈의 이름」들인 황희, 맹사성. 유관. 성삼문이나 방현령. 두여회. 위징. 서세적이니 다들 정직하고 청렴하며 용맹하며 식견이 빼어나다는 것이다. 지금도 어린 세손 단종을 부탁한다는 고명을 받는 성삼문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며, (3청(3靑)으로 불리던) 하인들의 말마다「네가 옳다!」하던 넉살좋은 황희 정승, 나들이엔 꼭 소를 타며 젊은 선비와 「공」자를 희롱하던 고불 맹사성. 동대문 밖의 집에서 우산으로 비를 가리지만 우산이 없는 민초들을 걱정하던 유관은 우리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이세민을 따라 전장을 누비며 나중 대궐 안의 능연각(凌煙閣)벽에 24명의 개국공산 초상화의 주인이 된 방현령. 두여회. 위징. 서세적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들이 궁궐 안팎으로 분주히 오고 가는 모습들이 잡혀진다. 세종이나 당태종은 집현전과 능연각을 통해서 「준재」들의 자부심을 심어주고 공로를 잊지 않았다. 우리가 그때 살았더라면 아마 집현전 학사 되려 힘썼을 것이고. 능연각 벽에 자기 얼굴이 그려지기 위하여 바삐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에게는 훌륭한 측근이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그것을 「군자가 군자를 알아보는」단계로 이해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삼대 밭에서는 쑥도 곧게 자라는」환경적인 것에 착안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용장 밑에는 약졸 없다.」는 경험칙도 이용할 수 있다. 어쨌든 훌륭한 지도자에게는 나비가 꽃을 추종하듯이 훌륭한 인재들이 운집(雲集)할 수밖에 없고. 어리석고 멍청한 지도자에게는 남이장군을 모함한 유자광이나 명나라 말기 위충현 같은 간신들이 득세함도 알게 되는 것이다.

     

    곧 지도자가 정직하고 강직하며 솔선하며 통찰력이 있으면 사특하고 졸렬한 것들은 도저히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위에서 우연이라고 했는데 말을 바꾸어 이것은 「바늘 가는데 실가는 것」처럼 필연적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에는 부나방들이 몰려드는 것은 많은 권력규칙중의 하나이다. 민주정이라고 예외일 수 없으며,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는 더욱 심하다고 볼 것이다. 사심 없는 지도자. 명철한 지도자. 기품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야 그에 부응하며 그에 상응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순서로는 지도자가 먼저 올바르거나 후덕하면 아랫사람도 따라서 올바르고 후덕하게 되는 것이다.

     

    세종과 당태종은 사람을 볼 때 얼굴만 본 것 아니라 속내를 봤을 것이고, 그들의 불꽃 같이 이글거리는 두 눈은 세상의 허접한 명성이나 너절한 평판 대신 사람의 중심을 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황희나 맹사성. 방현령이나 두여회는 명군(明君)을 만난 행운아이고 암군이요 혼군인 송고종과 조선 인조를 만난 악비나 임경업은 무척 불운한 사람인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와 훌륭한 측근의 만남은 마치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지음(知音)의 백아가 종자기를 만나고 부안 기생 매창이 유희경을 만난 것 같이 삶의 활력소이고 알아줌이 되는 것이다.

     

    중국 전국책에 보면 안촉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제가 임금 앞으로 가는 것은 제가 세력을 사모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임금께서 제 앞으로 오는 것은 임금님께서 현명한 선비를 구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라고. 오늘날 지도자연 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과연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더욱이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옛날 임진왜란 때 천민들이 왜군의 포로 되길 애원하고 오늘날 국회청문회만 열리면 볼썽 사나운 것이 많은 것은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2010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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